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이재명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에스케이그룹 회장이 지난 6월29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광고안선희 | 논설위원실장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은 1983년 2월8일 일본 도쿄 오쿠라 호텔에서 사돈인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에게 국제전화를 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삼성은 반도체를 할 것이니 이 사실을 내외에 공표해주시오.”(2·8 도쿄선언) 며칠 지나지 않아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도 (에스케이(SK)하이닉스의 전신인) 현대전자 설립을 발표한다. 당시 미국과 일본이 장악하고 있던 반도체 산업에 뛰어드는 것은 도박에 가까웠다. 두 걸출한 경영자의 결단이 한국 반도체 신화의 서막을 연 것이다.무대를 만든 또 한 주역도 빠뜨리면 안 된다. 1981년 ‘반도체공업 육성 세부계획’을 수립하는 등 한국 정부는 국가 주도 연구개발 프로젝트, 대규모 저리 대출, 세제 혜택 등을 통해 전폭적으로 반도체 산업을 지원했다.광고여기에 한가지 요소가 더해졌다. 1980년대 일본은 미국을 제치고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강자로 떠오르고 있었다. 미국은 일본 반도체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고 나섰고, 1986년 일본은 결국 디램의 대미 수출량과 가격을 제한하고 미국 반도체 수입량을 늘리는 내용의 ‘미-일 반도체협정’을 체결한다. 바로 전해에 이뤄진 ‘플라자 합의’와 함께, 미국의 ‘제1 경제대국’ 지위를 위협하던 일본의 기세를 꺾어버리려는 미국의 대일 견제 전략이었다. 1980년대 세계 반도체 상위 열개 기업 중 여섯개가 일본 기업(일본전기, 도시바, 히타치, 후지쓰, 미쓰비시, 마쓰시타)이었지만, 현재는 하나도 없다. 일본의 빈자리는 한국의 차지가 됐다.최태원 에스케이그룹 회장이 지난 15일 기자간담회에서 “반도체 가격이 내려가지 않을까 봐, 더 올라갈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이 우려하는 것은 반도체 가격이 상승하면서 컴퓨터, 휴대폰 등이 따라 오르는 ‘칩플레이션’이다. 그는 “칩플레이션이 발달이 되면 저희는 무조건 지정학을 얻어맞는다”며 “옛날에 똑같이 일본도 맞았던 이야기가 되고, 특히 미국이나 중국이나 가만두지 않을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도 맞았던 이야기’는 미-일 반도체협정을 가리키는 것일 것이다. 물론 40년 전과 상황은 많이 다르다. 당시에는 저렴하고 품질 좋은 일본 반도체가 미국 기업이 생산한 반도체를 밀어내는 것이 문제였다.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물량이 달려 가격이 오르는 것이 문제다.광고광고하지만 미국의 입장에서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불안한 지점은 동일하다. 미국이 외국의 반도체와 반도체 생산 설비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40년 전 그 외국이 일본이었다면 지금은 한국과 대만일 것이다. 반도체는 이미 1980년대에도 원유만큼이나 전략적으로 중요한 산업이었다. 인공지능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은 말할 것도 없다. ‘반도체 국가주의’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미국의 결론은 남아 있는 자국 기업인 인텔과 마이크론을 보호하는 한편,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 대만의 티에스엠시(TSMC)에는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도록 압박하는 것이다.안보 카드, 관세, 기술 제재 등 미국이 쓸 수 있는 지렛대는 다양하다. 1980년대 자유무역을 옹호하던 레이건 행정부도 일본에 보복관세를 휘둘렀는데,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 행정부가 못 꺼내 들 무기는 없다. 이미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지난 1월 “메모리를 만들고 싶은 모두에게는 두가지 선택지가 있다. 100% 관세를 내거나, 미국에서 생산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동안 뜸하다 지난 9일 또다시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를 미국으로 불러와 생산시설을 짓게 하고 싶다”는 말을 흘렸다. 이미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공장을, 에스케이하이닉스는 패키징 공장을 짓고 있지만 성에 차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광고최 회장은 “(미국을 포함해) 지을 수 있는 모든 곳에 지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반도체 산업의 구조적인 장기 호황이 계속된다면, 용인에도, 호남에도, 미국에도 ‘사이좋게’ 팹을 나눠 지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반도체 수요가 어느 순간 꺼지고 공급 과잉 국면이 시작된다면 한국과 미국 간 제로섬 게임이 벌어질 수도 있다.인공지능 투자 붐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어떤 파괴적 혁신 기술이 기존 반도체를 무용지물로 만들지는 않을지, 중국 반도체 산업이 어디까지 따라붙을지, 한국 반도체가 주시해야 할 위험 요인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무엇보다 쇠락의 기운에도 여전히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힘과 수단을 가진 최강국 미국이 어떤 패를 들고 판을 흔들지를 경계해야 한다.왕도는 없다. 기술 우위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면서,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가며 환경 변화에 맞춰 전략을 세워 나갈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기업은 2인3각 경기를 하듯 움직여야 한다. 40년 전에도 그랬듯이 말이다. ‘지정학에 얻어맞’지 않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s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