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동물자유연대 사무실이 이사하기 전 마당냥이 호시, 영식, 지지의 모습. 동물자유연대 제공광고정진아 | 동물자유연대 이슈행동팀장20여년간 한자리를 지켜온 우리 사무실은 사람만의 공간이 아니었다. 봄이면 현관 앞 라일락이 향기를 내뿜었고, 마당엔 고양이들이 터줏대감처럼 한가로이 머물렀으며, 나뭇가지에는 참새를 비롯한 여러 새들이 지저귀며 노래했다.그러나 오래된 사무실의 이전과 건물 철거가 결정되면서 그곳에 터를 잡은 모두의 일상 또한 하루아침에 뒤바뀌었다. 고양이들이 볕을 쬐던 안락한 마당은 머지않아 폐허가 될 것이었고, 공간의 안부를 살피던 사람들의 발길도 곧 끊길 터였다. 인간이 아닌 거주자들에게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익숙한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사라질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광고결국 이삿날이 밝았고 사람들은 떠났다. 사무실 마당을 집 삼았던 고양이 세마리는 단체가 운영하는 곳으로 거처를 옮겼고, 새들 몫의 물그릇은 틈나는 대로 옛 건물에 들러 물을 채워 놓는다. 가능한 방도를 강구해 봤지만, 공간의 상실이 이들 삶에 미칠 파장을 생각하면 줄곧 마음이 무겁다.집 한채가 품었던 서사를 도시 전체로 확장해본다. 전국 곳곳에서 쉼 없이 이어지는 재개발과 재건축 현장, 그곳 역시 수많은 생명이 살았거나 여전히 살고 있다. 골목을 오가던 동네고양이, 처마 밑 새 둥지, 풀숲과 흙 속의 곤충까지, 그 땅의 거주자는 비단 사람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방을 둘러싼 가림막 속, 기존의 세계가 무너지고 새로운 공간이 들어서는 파괴와 재건의 과정에서 인간 아닌 또 다른 거주자들의 생존은 철저하게 지워진다.광고광고물론 개발사업 전 환경영향평가와 같은 제도를 통해 멸종위기종 등 일부 동물은 어느 정도 고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인간의 시선으로 매긴 ‘생명의 등급’에 따른 것이란 점은 씁쓸함을 남긴다.하물며 인간의 기준에서 낮은 등급에 속하는 동물은 최소한의 안전조차 보장받기 어렵다. 동네고양이나 비둘기처럼 일정 부분 야생성을 지니면서도 인간의 생활권과 밀접하게 얽혀 사는 삶의 형태는 야생동물에도 반려동물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이들을 ‘경계동물’로 분류해야 한다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인간 곁에 가까이 사는 탓에 덜 중요한 존재로 취급받는 경계동물은, 같은 이유로 개발의 가장 큰 피해자이기도 하다. 이들 역시 공사 전에 서식 현황을 파악하고, 공사 과정에서 갇히거나 매몰되지 않도록 조치하는 등 제도적으로 생존을 보장받아야 한다.광고사실 동물단체 활동가인 나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공사 현장에 남겨진 동물을 살려달라는 민원은 끊이지 않고, 손쓸 수 없는 사안 앞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절박함을 마주할 때면 깊은 무력감이 든다. 단체 차원에서 재개발 지역 돌봄활동가 협의체를 지원하고, 지자체와 건설사 등에 동물 보호 조치를 요구하며 여력이 닿는 한 노력하고 있지만, 미처 닿지 못하는 수많은 현장을 생각하면 마음 한편 부채감이 가시지 않는다.시민단체의 지원과 소수의 헌신에만 의존하는 현재의 체계는 명백한 한계를 지닌다. 위험에 처한 동물 하나하나의 구조는 더없이 소중하지만,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개별 현장에 전부 대응하지는 못하더라도 제도 변화에 꾸준히 초점을 맞춰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발 구역 동물의 생존권은 민간의 선의나 봉사가 아니라, 도시 계획 과정에서 필수로 다루어야 할 공적 과제다.참새가 물 먹는 모습. 정진아 제공새들의 물그릇을 채우러 들른 옛 사무실은 철거를 앞두고 적막해 보였지만, 귓가에 들려오는 새소리만은 전과 다름없이 생기가 넘쳤다. 사람이 모두 떠난 그곳에 아직 떠나지 못한 주민이 있다. 도시를 부수고 새로 짓는 권한을 오직 인간만이 쥐고 있다면, 위태로운 경계에 내몰리는 모든 존재에 대한 책임 역시 마땅히 인간의 몫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