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고 실습생의 산재사망을 다룬 영화 ‘다음 소희’ 스틸컷.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광고2027년 최저임금이 시급 1만700원으로 결정됐다. 노동계는 1만1450원을 제시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전국의 여성노동단체는 15일 일제히 성명을 내고 “저임금 노동에 집중되어 있는 여성노동자들은 깊은 분노와 배신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여성 노동자 중에서도 맨 밑바닥에 있는 10~20대 청년 여성은 치솟는 물가와 양극화 속에서 형편이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청년 여성 노동자의 이름은 다양하다. 알바, 학생, 막내, 인턴, 기간제, 걔, 얘, 야, ○○년으로 불린다. 일하는 곳도 다채롭다. 물류센터, 빵집, 어린이집, 방송국, 미용실, 네일숍, 콜센터, 영상 제작업체, 편의점과 카페, 학교 등이다. 작가 겸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전수경은 20세기보다 훨씬 세분화된 ‘21세기 여공’을 찾아 나섰다. 옛날 여공들이 ‘타이밍’이라는 각성제를 먹으며 미싱을 돌렸다면, 지금의 청년 여성들은 고카페인 에너지 드링크를 먹으며 야간 알바를 한다. 젊은 여성들이 실업급여로 명품백을 산다며 ‘시럽급여 받아 꿀 빤다’고 비난하지만, 실업급여는 꿈도 못꾸는 경우가 태반이다. 노동자 계급의 딸들은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전담하는 수가 많다. 여러 가족을 동시에 돌보면서 고깃집 서빙, 식당 설거지, 물류센터 야간 일용직 등 닥치는 대로 육체노동을 한다. 작가가 만난 많은 청년 여성들이 학력자본을 취득하려고 아르바이트에 아르바이트를 했다. 잠을 못 자고 육체노동을 주로 해서 젊은 나이에 ‘골병’이 들었다. 가난, 질병, 가부장제는 3종 세트로 엄습해왔다. 여기에 나이 위계와 성차별이 더해졌다. 물리적, 심리적 고립감이 차곡차곡 쌓여 몸과 마음이 무너졌다.광고한국여성노동자회·전국여성노동조합이 지난 5월2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제10차 여성 비정규직 임금차별 타파 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손지민 기자 sjm@hani.co.kr 노동 시장은 처음부터 폭력적이고 무례했다. 학교는 “(여자에게) 기술은 필요 없”고, “외모가 중요하다”고 했다. 금융기관은 여성 고졸 신입사원 채용을 생색내기로 이용했는데, 교사는 기업의 여성 차별을 학교에 그대로 이식했다. 여성 청년을 위로하거나 격려하는 어른은 없었다. 콜센터에 간 청년은 “더 이상 갈 데가 없어서 여기까지 온 거 아니예요?”라는 말을 들었다. 많은 청년 여성들이 주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계약직, 특수고용 노동자, 기간제, 일용직으로 일한다. 작가가 만난 여성 청년 대다수의 임금은 낮았다. 정규직은 별로 없었다. 돈이 떨어져 물만 마시다가 “한강 다리 위에 서봤다”는 사람도 있었다. 일터에서 ‘막내’는 신분이었고, ‘어린 여자’는 맨 아래 계급이었다. 가난하고 힘도 빽도 없는 신세인데 직장에서는 엄마 노릇을 해야만 했다.광고광고 여성은 남성을 보조해야 한다고 여기는 가부장 문화가 공기처럼 만연했다. 밥 때마다 윗사람 도시락의 비닐을 “싹 다 까드리는 거”를 했고, 나이 많은 기간제 직원들이 밀어낸 일을 도맡았다. 공식적인 노동관계였지만 ‘어리다’며 만만하게 보고, ‘오랫동안 봐서 쉽게 생각했다’며 고위직 남성에게 성희롱 피해를 입었다. 회사는 가해 남성을 몰래 승진시켰다.아무도 나를 몰랐지만 ㅣ 전수경 지음, 아를, 1만7000원 부당해도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수작업에 시달리다 입력 프로그램을 사달라고 하자 상사는 “그 프로그램보다 네 월급이 싸서 널 쓰는 거”라고 했다. 이주 여성노동자는 손이 으스러졌고, “비닐하우스”, “더웠다”, “못 잤다”, “못 먹었다” 같은 간단한 말로 한국 일터에서 보낸 10년 청춘을 설명했다. 여성 청년들은 성차별을 말하면 따돌림을 겪었고, 산업재해를 겪고도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입을 열면 고분고분하지 않다며 공공연히 모욕을 줬다. “저거, 기 죽여야 돼.”광고 ‘어린 여자’의 노동을 인정하지 않아서 편법과 착취가 횡행했다. 공공기관임에도 퇴직금을 안 주려고 계약 기간은 1년에서 하루를 뺀 364일로 잡았다. 여자들이 나갈 땐 실업급여를 못 받게 하더니, 남자 직원이 나갈 땐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회사가 해고 처리를 해주기도 했다. 예민하다는 낙인, 은폐와 따돌림, 모욕 역시 저항을 분쇄하고 입을 막는 기업의 경영 수법이었다. “차별은 누가 목소리를 갖고 있는가, 누구의 목소리를 박탈할 수 있는가를 정확하게 파악한 후 가장 약한 사람에게로 왔다.” 20명 청년 여성 노동자들의 경험을 담아서, 전수경 작가는 ‘아무도 나를 몰랐지만’이라는 책을 썼다. 저자는 “직장 안에서의 폭력성은 우리 사회의 문화적 요소와 기업의 본질이 만나면서 만들어지는 구조적 문제”라고 했다. 1970년대 오빠의 학비를 벌던 봉제공장 노동자들과 오늘날 수천번 손목을 꺾어 아이스크림을 퍼야 하는 아이스크림 카페의 여성노동자가 겹쳐 보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21세기 여공들은 여기에 비난과 자기 혐오가 잇따른다. 멘탈 관리를 못해서, 마음 챙김을 못해서, 나약해서 그렇다는 질타를 들었고, 자책했다. 청년 여성들은 지금 하는 일을 더 잘하려고 “자기계발”하는 게 아니라, 그저 생존하려고 “자기개발”을 한다. 직장 내 성희롱뿐만 아니라 힘들게 일하면서 돈을 못 받는 여성 노동, 계급적인 문제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이 책은 말한다. 시화, 마침내 빛날 l 공계진 지음, 교유서가, 1만8800원 먹이사슬의 가장 밑바닥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시화, 마침내 빛날’도 비슷한 시기에 출간됐다. 시화공단 작은 공장 노동자들의 권리 찾기 역사에서 ‘살아 있는 전설’로 통하는 공계진 시화노동정책연구소 이사장이 쓴 책이다. 25년 동안 시화공단에서 만난 작은 공장 노동자들과 활동가들의 일화를 담은 이 책에서도 오늘날 여성 노동자의 상황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여성 노동자는 곧바로 ‘대체’가 가능하며 “이런 구조 속에서 임금을 높여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공장쪽 얘기 같은 것 말이다.광고 저자는 25년 동안 ‘나갈 것인가, 참을 것인가’ 고민하는 노동자들을 상담하고 조직해왔다. 노동자로서 조용히 일만 하다 나갈 필요도, 일하면서 참기만 할 이유도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작은 비에도 고립되는 섬처럼, 밑바닥 노동자들은 쉽게 단절된다. 하지만 함께 방법을 찾아보자고, 당신 탓이 아니니 목소리를 내자고 손을 내민다. “약한 사람에게는 이야기가 곧 힘”(전수경)이기 때문이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