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일러스트레이션 김우석광고김현아 | 작가·로드스꼴라 대표교사 안녕하세요, 어딘. 카톡 확인을 잘 하지 않아 답장이 늦었네요. 소식 전해주셔서 감사해요. 예전에 로드스꼴라에서 하와이 사진 신부(사탕수수 농장 이주노동자의 신부)에 대해 공부했던 생각이 나서 반가워지네요. 꼭 읽어보겠습니다. 저는 사실 올해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느라 학원을 다니고 있어요. 오랜만에 하는 공부라 몸이 말을 잘 안 들어도 그냥 계속하는 중이에요. 어딘은 잘 지내시죠? 날이 습해지니 더위 조심하세요.새 책이 나온 김에 겸사겸사 아는 사람들한테 문자를 보냈더니 루에게 답장이 왔다. 루를 처음 만난 건 그의 나이 열다섯살 나던 해였다. 내가 교사로 일하는 주말여행학교에 들어와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 여행도 하고 공부도 같이했다. 루에 대한 선명한 첫 기억은 우즈베키스탄 여행 중에서 비롯된다. 사마르칸트, 지금 생각해도 가슴 설레는 지명이다. 호텔 로비에서 루와 동료 한명을 호되게 혼냈다. 아마 지키기로 한 약속을 살짝 어겼거나 뭐 그런, 중요하다면 중요하고 아니라면 아닐 수도 있는 이유에서였을 거다. 표정도 별로 안 변하고 고개도 안 떨구고 변명도 항변도 하지 않고 잘, 어쩌면 그렇게 잘, 루는 혼이 났다. 다음날인가 다음다음날인가 이번에는 레스토랑에서 다시 혼이 났다. 낯선 음식을 대하는 태도, 또 뭐 그런 중요하다면 중요할 수도 있고 아니라면 아닐 수도 있는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레스토랑 밖으로 불러내 야외 테이블에 앉아 혼을 내고 혼이 나는 우리를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유심히 구경했다. 그때도 루는 ‘시크한’ 표정으로 나의 일장 연설을 자알, 아주 자알 들어주었다. 여느 중2 여자 학생들처럼 루 또한 아무 데서나 거울을 꺼내 보는 ‘거울 공주’였는데 그런 행동은 사적인 행위니 화장실이나 자신의 방에서 해라, 공동의 짐을 옮길 때는 힘을 보태라 따위도 루가 들어야 했던 꾸지람이었다. 나 같으면 에라 여기 아니면 여행 못 하냐, 안 하고 만다 했을 터인데 루는 그 이후로 2년이나 더 주말여행학교에 다니고 열아홉 되던 해에 여행학교 로드스꼴라에 입학해 2년 과정을 마치고 졸업했다. 루, 너무 훌륭해요. 팀을 조율할 줄 알고 하고 싶은 말도 정확하게 해요. 졸업식 날 그의 담임이 말했다.광고혼이 난 이야기라면 평을 빼놓을 수 없다. 평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여행학교 로드스꼴라에 입학했다. 나는 그의 담임이었다. 마을프로젝트, 지역의 한 마을에 들어가 3~4주 머물면서 마을의 문화나 역사를 배우고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듣는 로드스꼴라의 첫 학기 프로젝트를 하러 가면, 할머니들이 아이구 총각 인물이 훤하네, 아이고 이 총각 인물 좋으네 하며 이뻐라 하던 학생이었다. 평, 너 몇살이니? 스무살인데요. 대학 안 가고 왜 이 학교 왔어? 평이 입을 다문다. 곰곰 생각을 해보는 모양이다. 나는 네가 다른 학생들과는 조금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 십대들이야 아직 시간도 많고 철도 덜 들고 그러니 제대로 못 해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데, 너는 이십대잖아. 집중하고 몰두해서 프로젝트에 임해야지, 그렇게 십대들하고 시시덕거리고 놀면 어떡해. 그러기에는 네 나이가 너무 많아. 평의 얼굴 근육이 굳었다. 슬슬 할 거면 나가, 여기 있지 말고. 좀 더 바람 찬 들판으로 나가서 살아. 온실 속에 있지 말고. 이십여분 찐하게 혼을 내는 동안 평은 그걸 다 들어주었다. 굼실굼실 진한 눈썹이 모였다 풀어지고를 반복했다. 그러고 나면 한 이틀 나름 진지하고 말도 없이 노트도 열심히 하고 혼자 떨어져 뭔가 책도 뒤적이곤 하지만 사흘을 넘진 못했다. 3일쯤 되면 또 동료들과 희희낙락 떠들고 장난치기에 여념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참 경계 없는 사람이었다. 어리다고 무시하지 않고 한두살 많다고 위계를 만들지도 않았다. 평화롭고 넉넉하고 도량 큰 사람이었다. 네팔 여행 중에 무리하게 걷다 탈이 난 나에게 등을 내밀며 평이 말했다. 업히세요, 어딘.애드에게라면 조금 미안하다. 작정하고 모진 말을 하기도 했다. 이어질 인연이면 이어지겠지 하는 심정으로. 총명하고 이쁘고 섬세했다. 와장창 깨져야 할 것들이 깨지고 나면 질투나 시기를 유발하지 않는 강건하고 지적이며 근사한 사람이 될 것이 분명했다. 충분히 똑똑해서 스스로를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애드에게 나는 조금 독하게 자기 객관화를 요구했다.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말고 스스로를 기망하지 말며 우월감도 열등감도 갖지 말 것을, 맙소사, 이십대 초반의 애드에게 요청하다니. 세상의 어느 누가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스스로를 기망하지 않으며 우월감도 열등감도 갖지 않는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주문을 애드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들어주었다. 돌이켜보면 내 말들 중 일부는 무례하고 무도한 말이었을 것이다. 견뎌주고 참아주던 애드는 당연히 내 곁을 떠났다, 고 아직은 안 써도 될 거 같다. 얼마 전 애드가 책 두권을 보내주었다. 내가 흥미 있어 할 주제라며. 딱 요즘 궁금해하는 영역의 책이었다. 여전히 총명하고 이쁘고 섬세한데 품이 넓은 사람까지 되었구나, 애드. 쑥스럽고 부끄러워 혼자 중얼거렸다.광고광고기꺼이 혼이 나주던 이들, 당신이 그렇게 펄펄 뛰니 요번 한번은 내 당신 말을 경청해주리다, 라는 표정으로 주억주억하며 내 말을 들어주던 이들. 곰곰 되돌아보면 앞뒤 재지 않고 그토록 마구 혼을 낼 수 있었던 건 아마도 ‘믿음’이 있었던 게다.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릴 것이다, 라는. 존경하는 제자이자 친구인 금강이 일찍이 말했다. 어른들 말 다 들을 필요 없어.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 금강 나이 열여덟인가 열아홉이었는데, 아아 어쩐지 나는 숨통이 트였다.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를 듣고 의기소침해진 친구를 위로하는 말을 우연히 듣게 된 것이 이후 본격 ‘선생질’을 하게 된 나에게 큰 지침이 되어주었다. 나는 ‘하고 싶고’ ‘해야 할’ 말을 조금은 자유롭게, 아니 아주 자유롭게 하는 호사를 누렸다. 기꺼이 혼 쫌 나주던 훌륭한 분들 덕분에.지금에야 알겠다. 혼을 내고 혼이 나던 그 시절의 우리는 굳세고 의연하고 심장이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눈치 보지 않는 어른 역할 놀이를 했고, 그들은 삼갈 줄 아는 젊은이 역할 놀이를 한 셈이다. 아직 ‘선생질’을 하고 있지만 요즘 나는 학생들을 혼내지 않는다. 쾅쾅쾅 심장을 두드리던 호시절은 지났다. 흔쾌히 혼이 나주던 학생들이 있었다, 한 시절.광고
당신이 펄펄 뛰시니 혼 한번 나드립죠 [김현아의 우연한 연결]
김현아 | 작가·로드스꼴라 대표교사 안녕하세요, 어딘. 카톡 확인을 잘 하지 않아 답장이 늦었네요. 소식 전해주셔서 감사해요. 예전에 로드스꼴라에서 하와이 사진 신부(사탕수수 농장 이주노동자의 신부)에 대해 공부했던 생각이 나서 반가워지네요. 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