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2021년 7월22일 서울 구로구 ‘산재노동자 자활공동체’ 작업장에서 노동자들이 우편물 발송 업무를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광고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나는 2021년 9월 한겨레21에 서울 구로동에서 우편발송 대행사업을 하는 산재노동자 자활공동체를 소개한 적이 있다.(한겨레21 1380호 ‘손이 잘려나가는 동안 아무도 오지 않았다’) 1980년대 말, 90년대 초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분출될 때 산재 노동자로 자신들을 정체화하고 노동운동의 흐름에 동참했던 이들이 모여 ‘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산재노협)를 만들었고, 회원이 된 노동자들이 데모를 함께하는 것뿐만 아니라 경제활동도 함께해 보고자 만든 것이 우편발송 대행사업체였다. 산재노협 회원이 되는 경로는 대체로 비슷했다. 기계에 손을 다쳐 접합수술을 하거나 접합수술이 실패해 손가락이나 손목이 절단된 노동자들이 병원에 누워 있으면 이를 먼저 경험한 선배 노동자들이 병실을 돌며 산재보상을 도와주고 산재노협 주소를 건넸다. 트라우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이런 말은 몰랐지만 산재노협 회원들은 요샛말로 동료 상담가였다.(어떤 업종에서 일을 했는지, 어디를 다쳤는지, 얼마나 다쳤는지에 따라 병원에 입원해 있는 노동자들의 모임이 만들어진 것 같다. 산재노협에는 손이 절단된 노동자들이 주로 모였다.)쇠를 깎고 물건을 뽑아내던 사람이 벼락같은 사고를 당하고 병실에 누워 있어도 사업주나 국가는 돌아보지 않았다. 퇴원을 한 노동자들은 서러운 마음을 알아주는 산재노협에 찾아왔다. 2000년대에도 종종 신입회원들이 들어왔다. 손이 다친 모양, 장애가 남은 모양은 다 달랐지만 사는 모습은 비슷하게 가난했다. 생계가 급해서 공장으로 갔고 손을 다쳐 받은 보상금은 금방 동이 났다. 같이 일하고 같이 분배하는 우편발송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가져가는 돈은 적어도 활기가 넘쳤다. 그러나 좋은 날은 잠깐이었고 내내 어려웠다. 산재노협을 후원하던 시민들과 노동조합들도 각자의 사정으로 분주해지고 관심이 식어갔다. 우편 발송을 의뢰하던 사회단체들도 간행물을 뉴스레터나 웹진으로 바꾼 지도 오래되어, 일감은 줄어들다 못해 씨가 말랐다. 서로의 부서진 손을 보면서 반찬을 집어 주던 사람들은 각자의 먹고살 일을 찾아 흩어졌다. 올봄 산재노동자 자활공동체는 폐업했다. 5년 전 한겨레21에 실린다고 사진기자 앞에 섰던 강송구씨가 자활공동체 폐업 소식을 전하려고 내게 연락해서는 “쪽박 찼지. 사는 게 힘들어” 말했다.광고그리고 여름이 막 시작되는 5월 하순에 한 사람이 죽었다. 자살이라고 했다. 말을 할 때는 느릿느릿하고 시끄러운 술자리나 밥자리에서 맞은편 사람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가며 이야기하면 빙긋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던 이였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건 지난해 겨울밤 구로역에서였다. 이제는 더 이상 활동하지 않는 산재노협의 연말 모임이 있던 날이었다. 기다리는 열차는 오지 않고 플랫폼은 추웠다. 그는 사고로 절단되어 엄지만 온전한 채 한마디씩이 없는 오른손 네 손가락을 외투 속에 찔러 넣고 있었다. 20대에 기계에 다친 손이 50대가 되어도 시린 모양이었다. 소주를 적당히 마신 그는 오지 않는 열차를 기다리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는 건설 현장에 나가고 있는데, 다음날인 일요일에도 일을 가야 해서 딱 1차만 하고 일어선 거라고, 일하기에 추운 날들이라고 했다. 나는 건설 현장이 주말엔 쉬고 법정 노동시간을 지키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 그가 아주 작은 공사장에 나가나 보다 혼자 생각했다. 나는 바쁜 일도 없었는데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는 전화를 받지 못했다. 조문을 다녀온 지인이 조문객이 없는 쓸쓸한 장례식장 풍경을 전하면서 말했다. ‘일이 없어서 좀 힘들었나 봐.’그가 왜 세상을 등졌는지 이제는 물을 수가 없다. 그러나 저 한겨레21의 인터뷰에서 박용식씨는 이런 말을 했었다.광고광고“못다 한 얘기도 많고, 화나고 다 부수고 싶거든. 자살도 많이 해.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모여서 얘기하고 상담도 하잖아. 그래서 자살을 안 해.”산재노협을 떠나간, 가난했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지금 나라에는 넘치는 돈을 어디에 써야 할지 난감할 만큼 돈이 많다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정치의 수사로도 등장하지 않는 것 같다. 세상을 바꾸자는 대열을 따라가며 깃발도 들었고 다른 노동자들이 투쟁할 땐 연대했던 사람들, 약자였지만 주저앉지 않고 함께 모여 나아가고자 했던 사람들을 기억하고 기리는 일을 더 이상 미루지 말아야겠다고 혼자 다짐한다.광고
문 닫은 자활공동체, 잊힌 사람들 [세상읽기]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나는 2021년 9월 한겨레21에 서울 구로동에서 우편발송 대행사업을 하는 산재노동자 자활공동체를 소개한 적이 있다.( 한겨레21 1380호 ‘손이 잘려나가는 동안 아무도 오지 않았다’ ) 1980년대 말, 90년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