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게티이미지뱅크광고새벽 5시30분 목동 운동장 트랙에서 달리는데, 신정여자고등학교 육상 선수 한 명이 가벼운 몸놀림으로 옆으로 다가왔다. “같이 뛰어도 될까요? 선생님, 그런데 이렇게 새벽에 나와서 뛰면 스트레스가 풀리시나요? 저는 아침에 더 자고 싶은데.” 새벽 훈련에 나온 기특하고 예쁜 학생이 나에게 새벽에 뛰면 힘들지 않냐고 물으며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고 우리는 달리면서 대화를 나누었다.철학자, 예술가, 학자 중에 걸으며 사색했던 이들이 있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숲을 걸으며 악상을 떠올리며 작곡했고 프리드리히 니체는 몇 시간씩 산길을 걸었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산길 걷기 속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임마누엘 칸트는 매일 같은 시간에 산책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국부론’으로 유명한 애덤 스미스는 마을 길을 걸으며 경제학의 원리를 이해하고 발전시켰는데, 어느 날은 생각에 몰입해 길을 따라 걷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16㎞나 떨어진 이웃 마을이었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제자들과 걸으면서 철학을 논했다고 전해진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도 걸으면서 내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 더 잘 될 것 같다.김세희 제공걷거나 달리면 생각이 잘 정리되는 이유조용히 앉아서 기도하는 것도 좋지만, 달리는 동안 묵상하면 내면이 더 정화되고 의식이 고양되는 걸 느낀다. 생각이 막혔던 통로가 뚫리고 영혼의 시야가 넓어진다. ‘무엇을 먹고 입을까?’와 같은 일상에 관한 생각에 머물지 않고 의식이 지향하는 차원이 높아진다. 달리는 동안 사유(思惟)할 때 생각이 트이고 깨달음이 오는 경험도 자주 한다. 걷거나 달리는 동안 더 깊은 성찰과 창의적 사고, 자각이 일어난다.광고걸을 때나 달릴 때 생각이 더 잘 갈무리되고, 창의적이고 지혜로운 의견이 떠오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철학적 사유에는 마음 내면에 집중되고 긴장된 상태가 필요하다. 걷거나 달리는 것은 간단한 몸의 움직임이지만 이 간단한 동작을 지속하는 데는 집중이 필요하다. 걷는 게 아무것도 아닌 동작 같지만, 균형을 잡아 몸을 일으켜 세워 팔과 다리를 움직이고 이동하는 동안 뇌의 섬세한 조율과 지휘가 지속되어야 가능하다. 생각하는 것 역시 이를 관장하는 뇌 영역이 활성화된 상태에서 가능하다. 사유할 때, 또 걷기 위해서 뇌 네트워크 활성화가 동시에 일어나기에 시너지 효과를 얻는다. 특히 일상에서 벗어날 때 뇌의 기본모드네트워크(DMN, default mode network)가 활성화되며 사고가 유연해진다. 자기 성찰, 나의 바깥, 즉 타인과 세계에 대한 공감, 주변 정황에 대한 이해와 추론, 통찰, 창의성과 연관되는 뇌의 영역이다.그렇다고 모든 걷기가 깨달음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일상적인 걷기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상태를 의식하며 걷는 것과는 다르다. 출퇴근길 지하철역까지 걸을 때 깨달음이 오거나 창의적 사고의 문이 열리지는 않았다. ‘이렇게 생각하고 느끼고 있구나, 무엇 때문일까?’의문하고, ‘나’를 거리를 두고 의식하는 상태로 걷고 달릴 때 생각이 넓어지고 차원이 높아진다. 포장되지 않은 산길이나 숲 속을 달리는 것을 트레일러닝이라고 하는데, 산길은 노면의 굴곡이 크고 돌, 자갈, 나무뿌리 등이 있어서 주의해서 달리게 된다. 산길을 달릴 때는 더욱 달리고 있는 현재에 집중하게 되는데 다른 때보다 마음이 더 고요해지고 정화되는 것을 경험한다.광고광고클립아트코리아“아내랑 숲에서 대화가 잘 되요”강원도 일대 산길을 100km 달리는 ‘TNF 100’대회에 참가했던 적이 있다. 새벽 6시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 스키점프대(765m)를 출발해서 오목골(801m), 고루포기산(1238m), 닭목령(680m), 석두봉(1001m), 삽당령(658m), 만덕봉(880m), 단경골(240m), 칠성산(954m), 솔향수목원(107m), 칠봉산(330m), 오봉서원(50m), 신재생에너지(843m), 선자령(1157m)으로 해서 다시 오목골(801m), 스키점프대 (765m)로 돌아오는 코스다. 정선, 강릉, 강원도 일대 산자락과 능선을 온종일 오르고 내리며, 햇빛을 받고 바람을 맞으며, 몸과 마음, 정신이 맑아졌다. 땅에 한 발씩 내디딜 때마다 아주 작은 존재가 크나큰 지구의 표면을 밟는 느낌이었다. 언젠가 흙과 자연으로 돌아갈 몸이 지금은 이렇게 뛰고 있구나 싶었다. 고요한 산속에 울려 퍼지는 타닥타닥 발걸음 소리가 땅에 전하는 두드림 같이 느껴졌다. 나뭇잎, 흙, 나무 등 나를 둘러싼 대자연이 때론 웅장하게 때론 친밀하게 다가왔다. 땅과 하늘과 바람을 이렇게 진하게 느꼈던 적이 있었던가, 몸은 고되었지만, 정신은 온전하게 정화되었다.“선생님, 주말이면 아내와 함께 가까운 숲에서 오래 걸으면서 산책을 해요. 집에 있을 때보다 깊은 대화도 나눌 수 있고, 그러고 나면 마음도 편안해지고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여전히 회사에 오면 긴장이 높아지고 스트레스받지만 그래도 이전보다 많이 나아졌어요.”광고부부 사이에 대화를 나누는 데에는 생각보다 꽤 많은 집중과 긴장이 필요하다. 나의 입장이 있고, 상대편에서도 기준이 있기에 ‘나는 상대에게 어떤 것을 바라나, 왜 그렇게 바라나, 상대는 어떨까?’ 가늠하면서 느낌과 생각이 일어나고 있는 나의 마음에 거리를 두고 균형을 잡아야 한다. 이러한 긴장과 집중된 상태, 힘든 상태를 유지하기 싫기 때문에 사람 사이에서 갈등, 다툼이 있을 때 ‘스트레스받는다!’고 한다.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주시하고 또, 상대가 느끼는 감정도 내 마음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에 일어나는 생각과 느낌을 살피고 거리를 두기 위해 집중되고 긴장된 상태가 필요하다.클립아트코리아이미 집중한 마음 상태 덕분걸으면서 대화하면, 딴생각하거나 한눈팔지 않고 상대의 말에 집중하며 들을 수 있다. 더 이상 듣기 싫거나, 지겹다는 느낌이 잠시 들어도, 좀 더 인내하며 들을 수 있다. 다른 쪽으로 마음이 쏠리지 않게 이미 한 가지 행위를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거나 걸을 때 힘이 든다. ‘숨이 차다.’, ‘다리가 무겁다.’ 신체를 사용하는 것이 힘든 게 아니다. 일정한 동작을 구현하기 위해서 마음에 집중된 상태를 유지하는 데 힘이 든다. ‘더 이상 동작을 지속하고 싶지 않다, 힘을 쓰고 싶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 상태에서 멈추지 않고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게 힘이 든다. 문제 해결을 위해 생각을 지속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도 그 흐름을 지속하기 위해 내면에 집중된 상태를 유지하느라 힘이 든다. 달리면 이미 마음의 집중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기에, 사유하고 성찰할 수 있는 바탕이 준비되는 것이다.※이 글의 상담 사례로 등장하는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실제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마라톤 하는 정신과 의사 김세희의 ‘마인드 업’은?김세희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임상교수는 세계 6대 메이저 베를린·보스턴·도쿄·시카고·런던·뉴욕 마라톤을 포함해 50여 차례 국내외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했다. 최고 기록은 2024년 서울국제마라톤에서 세운 3시간7분30초다. 현재 삼성 서초사옥 마음건강클리닉에서 사내 임직원을 진료하고 있으며 대한 육상연맹 이사를 맡고 있다.마음이 속상하고 힘들 때,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스스로 마음을 보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답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알아차리고 이해하는 데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필자는 마라톤을 하면서 마음에 일어나는 생각과 느낌을 성찰하며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고, 스스로 내면을 풍요롭게 유지할 수 있었다. 지금도 새벽마다 달리며 지친 이들의 마음 건강을 돌볼 수 있는 원동력을 얻고 있다. 20년간 달리기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통해 깨달은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본다.(※네이버, 다음 등 포털뉴스 페이지에서는 하이퍼링크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주소창에 아래 링크를 복사해 붙여넣어 읽을 수 있습니다.)▶마라톤 하는 정신과 의사 김세희의 ‘마인드 업’ 연재 바로 가기https://www.hani.co.kr/arti/SERIES/3322김세희 |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임상교수·‘마음의 힘이 필요할 때 나는 달린다’ 저자BG
새벽에 뛰면 스트레스가 풀려요?
새벽 5시30분 목동 운동장 트랙에서 달리는데, 신정여자고등학교 육상 선수 한 명이 가벼운 몸놀림으로 옆으로 다가왔다. “같이 뛰어도 될까요? 선생님, 그런데 이렇게 새벽에 나와서 뛰면 스트레스가 풀리시나요? 저는 아침에 더 자고 싶은데.” 새벽 훈련에 나온 기특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