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 집 담장에서 관계자들이 선거 벽보를 철거하고 있다. 연합뉴스 광고 신동일 | 중앙대 영어영문학과 교수광고 당락은 결정되었다. 우리는 무엇에 설득되었을까? 선거철 정치인은 바쁘다. 재래시장에서 어묵을 먹고 상인들과 농담을 주고받는다. 토론회에서는 날 선 칼날을 휘두르는 전사가 되고, 정책 발표회에서는 통계 자료를 인용하며 합리적인 전문가로 변신한다. 과거 정치가 단일하고 일관된 권위, 혹은 이념의 목소리를 유지하려 했다면, 지금 정치는 상충하는 여러 목소리를 유연하게 오간다.광고광고 언어학에서는 이처럼 구체적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말투나 언어 양식을 ‘레지스터’라고 부른다. 친구 사이 대화, 회사 보고서, 법정에서 언어가 다르듯, 유명 정치인은 복수의 레지스터를 상황마다 혼합하고 전환한다. 예를 들면, 기술 관료적 레지스터가 사용되면 논쟁적 정치 사안은 ‘행정 효율’이나 ‘비용 절감’의 언어로 치환된다. 정치를 비정치화하면서 반대 진영의 이념적 공격을 무력화하는 칼날이다. 전투적 포퓰리즘 레지스터는 ‘우리’와 ‘그들’을 선명하게 나누고, ‘몰상식’ ‘적폐’ ‘한심한 사태’ 같은 감정적 언어로 지지자의 분노를 결집시키고 피해 서사를 자극한다. 친밀한 일상가 레지스터는 사소한 일상의 비유로 정치를 ‘상식’ 영역으로 끌어내린다. 이념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부드럽게 문지른다.광고 디지털 미디어 환경은 이 전략을 더욱 강화한다. 플랫폼마다 다른 레지스터가 수행되고, 알고리즘은 지지자들에게 유사한 콘텐츠를 반복해서 배달한다. 단편적 전투성을 복제하는 ‘쇼츠’, 친밀함을 강화하는 ‘유튜브 라이브’, 합리성을 연출하는 ‘언론 인터뷰’와 온라인 커뮤니티의 ‘밈’이 플랫폼에 따라 분절적으로 소비된다. 친밀함과 공격성과 합리성은 서로 충돌하기는커녕 하나의 매력적인 ‘캐릭터’로 봉합된다. 친밀함은 경계심을 무디게 만들고, 전문가의 언어는 정치적 선택을 기술적 판단처럼 보이게 만든다. 일상적 비유는 특정한 가치관과 이데올로기를 그저 상식처럼 느끼게 한다. 이제 정치의 위험은 거짓말이나 선동에 있기보다 어쩌면 친근하고, 유능하고, 상식적으로 들리는 매끄러운 언어가 대중의 비판적 사고를 우회하는 방식에 있다. 정치인이 정교하게 편집한 복수의 레지스터를 능숙하게 교차 수행하면, 대중은 복잡한 사회 문제를 이분법적 결투 서사처럼 바라본다. 과거 정치가 선명한 ‘내용’의 대결이었다면, 지금의 정치적 영향력은 말투와 캐릭터, 리듬과 거리감이라는 ‘체감’의 지배에 가깝다. 우리는 정치인의 논리적 선언문에 설득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상황에 맞춰 영리하게 호출하는 레지스터에 매료되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러한 ‘스타일의 조직화’가 이념의 편향성을 은폐하고, 한편만의 주장을 당연한 상식으로 믿게 만드는 ‘자연화 효과’를 낳는다는 점이다. 정치인이 편집한 복수의 레지스터가 교차 수행될 때, 대중은 논리적 비약을 인지하지 못한 채 정서적으로 동조하게 된다. 복잡한 사회 문제는 이분법적 결투 서사로 설명될 수 없는데 모든 것이 매끄러운 수사학에 밀려나고, 오직 내 편 캐릭터에 환호하는 팬덤만 남는 이유가 여기 있다. 선거철의 화려한 수사가 지나간 뒤에도 삶은 계속된다. ‘비판적 언어 감수성’을 갖지 못한다면 언어가 어떻게 권력관계를 재편하고 누구를 배제하는지 앞으로도 알아챌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능숙하게 인격을 교체하는 정치인의 레지스터에 감탄하는 일이 아니라, 거칠고 투박할지언정 공공의 문제를 정직하게 마주하는 소통의 회복일 것이다. 무대 위 정치인이 어떤 칼날을 갈고 있는지 그 수사의 안개를 걷어내고 볼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