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 광고“공동체는 (인공지능 관련) 결정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상으로 전락해선 안 된다.” 최근 교황 레오 14세의 경고는 인공지능(AI)의 지배력이 커지고, 그 수익의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는 시점에 나왔다. 기술 변화에 가장 영향을 받는 공동체가 소수 기술 권력이 독점해온 ‘에이아이 결정 구조’에 직접 개입해 “(방향을) 선택하고 수정하는” 힘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데이터를 누가 소유하고 어떤 목적으로 쓸지, 공공이 기여한 에이아이 인프라를 어떻게 활용할지, 에이아이가 어떤 기준으로 작동할지를 공동체가 함께 결정하는 ‘민주적 에이아이(Democratic AI)’ 관련 논의에 힘을 싣는 발언이다. 이는 ‘에이아이 특수’로 얻은 수익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사후 재분배’를 넘어, 에이아이 결정 구조에 공동체가 적극 참여해 시민적 통제권을 확보하는 전환을 의미한다. 에이아이 3대 강국으로 발돋움해 그 성장의 과실을 고루 누리게 하겠다는 이재명 정부의 에이아이 구상에서 아직 채워지지 않은 부분이기도 하다. 교황 레오 14세가 지난 1일 바티칸 시국 바오로 6세 홀에서 이탈리아 가톨릭 가이드 및 스카우트 협회(AGESCI)의 방문을 환영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광고 ■ 왜 민주적 에이아이인가 지금까지 에이아이 논의는 기술이 인간의 가치를 지키는 ‘윤리적 에이아이’, 누구나 기술의 혜택에 접근하는 ‘포용적 에이아이’ 쪽으로 모아졌다. 지난달 25일 교황은 ‘위대한 인간성’이라는 주제로 세계에 던진 메시지(회칙)에서 “도덕적 에이아이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제동을 걸었다. 도덕성 기준마저 일부가 결정한다면, ‘착한 에이아이’의 겉옷만 두른 소수의 보이지 않는 지배가 견고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알고리즘, 디지털플랫폼, 기술 인프라, 데이터”를 물과 공기처럼 ‘모두의 자원’(보편적 목적의 재화)으로 규정하고, 이를 소수의 통제 아래 두면 안 된다고 밝힌 점이다. 그러지 않을 경우 기술이 지배·배제·조작·파괴로 활용되고, 부의 편중 등 불평등이 깊어진다고 교황은 보았다. 그는 “(에이아이 시스템이) 어떻게 설계되었는지, 인간과 사회에 대한 어떤 시각을 담았는지까지 살펴봐야” 하며, “사회 정의라는 공동 기준에 부합하도록 요구할 용기”가 공동체에 주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주의를 움직이는 유용한 도구로 에이아이를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에이아이 위험성 자체를 제어하는 힘(구속력)을 시민에게 돌려주는 논의로 확장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광고광고 ■ 민주적 에이아이는 어떻게 가능할까 세계적 석학과 저명한 정치인들도 같은 방향을 가리키며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202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다론 아제모을루 메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최근 여러 기고문에서 “어떤 기술이 바람직한지는 누가 그것을 통제하는가에 달려 있다”며 교황의 발표를 반겼다. 그는 지배적 플랫폼의 독점에 강력히 대응하고, 인간의 능력을 키우는 ‘인간 보완적 에이아이’에 대한 공공 투자를 늘리며, 데이터에 대한 노동자·시민의 실질적 권리가 보장되도록 기술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주문했다. 내 데이터가 어떻게 쓰이는지 알아야 하며, 특정 목적에 활용되는 걸 거부할 수 있어야 하고, 공공 데이터로 만든 이익이 소수에 몰리는 구조를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미 자신의 책 ‘권력과 진보’에서 기술 권력이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도록 제어하는 ‘대항 권력’의 제도화를 강조해왔다.광고 플랫폼 협동조합주의를 주창하는 트레버 숄츠 뉴욕 뉴스쿨대 교수는 근본 구조의 문제를 지적한다. 그는 “민주적 에이아이는 ‘추출 스택’ 위에 세를 들어 살 수 없다”고 주장한다. 소수 기업이 독점하며 맨윗층에서 이익을 뽑아내는 ‘추출 구조’를 놔둔 채, ‘에이아이를 착하게 쓸 게’란 윤리적 선언만 옥탑방처럼 얹는다고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숄츠는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시민들이 직접 생산하고 축적한 데이터를 독립적 신탁기관이 공동체를 대신해 관리하면서 동의된 목적에만 활용하며, 협동조합과 공동체가 공공 인프라를 활용해 자신들의 목적에 맞는 에이아이 모델 개발에도 참여하고, 플랫폼도 노동자와 이용자가 직접 소유하는 구조로 하나씩 대체해나가자는 것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지역구를 둔 로 칸나 민주당 하원 의원은 지난 2월 진보정치인 버니 샌더스 상원 의원과 함께 ‘민주적 에이아이 7가지 원칙’까지 발표했다. 에이아이 독점을 강력히 규제할 연방 기관 신설, 에이아이 결정 구조에 이해당사자와 노동자 참여 보장, 데이터 활용 수익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데이터 배당’, 데이터센터가 있는 지역 사회에 대한 기업의 재정적 책임 부과 등이 포함됐다. 그는 “에이아이가 소수의 억만장자를 시중드는 도구로 쓰여선 안 된다”며, 민주적 에이아이를 ‘새로운 기술 사회계약’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버니 샌더스 의원은 더 나아간다. 그는 대형 에이아이 기업 지분의 절반(50%)을 일회성 세금 형식으로 환수해 시민을 위한 국부 펀드를 만드는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펀드로 시민에게 배당금을 지급하고, 의료·교육·주거 등 공공 영역에 투자하며, 지분만큼 이사회에 들어가 에이아이 의사결정에 참여하자는 구상이다. “에이아이는 책·노래·예술·저널리즘·컴퓨터 코드·과학연구·영상·이미지·아이디어 등 인류가 세대에 걸쳐 쌓은 집단적 지능 위에 세워져” 이익을 뽑는 만큼, 소유·의사결정·분배에 시민의 권리가 있다는 논리가 이 파격적 법안 계획의 핵심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025년 9월 서울 한강대로 서울스퀘어에서 열린 국가인공지능(AI) 전략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광고 ■ 한국의 길은 이재명 정부는 미국·중국과 견주는 에이아이 3강에 오르기 위해 지난해 9월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은 국가 인공지능전략위원회를 출범했다. 위원회는 에이아이 혁신 생태계 조성, 에이아이 기반으로 대전환, 글로벌 에이아이 기본사회 기여 등 3대 정책을 중심으로 99개 실행과제를 도출했다. 에이아이를 통한 국가 성장이 삶의 기본권을 든든히 받치고, 누구나 에이아이 서비스를 격차 없이 누리는 내용의 ‘에이아이 기본사회’를 목적지로 설정한 것이 특이점이다. 그 목표를 실현하려면, 에이아이 성장이 민주적 통제 위에서 이뤄지는 ‘한국의 길’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빠른 혁신이 장점인 ‘빅테크 기업 중심’의 미국 모델과 강한 추진력이 강점인 ‘국가 통제 중심’의 중국 모델 모두 에이아이 성장을 위해선 참고할 만하지만, ‘민주적 에이아이’라는 방향성에선 두 모델 모두 취약점이 있다. 위원회가 ‘에이아이 민주주의 분과’를 따로 두고 내용을 어떻게 채울지 고민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에이아이 혜택뿐 아니라 통제와 결정권이 시민과 공동체에 얼마나 오느냐가 ‘에이아이 기본사회’의 완성도를 결정할 것이란 의견도 적지 않다. 에이아이 민주주의 분과위원인 권오현 사회적협동조합 빠띠 대표는 “민주적 에이아이는 소유·결정·이익이 그것과 관계된 다중 이해당사자(노동자·소비자·이용자·데이터 주체·투자자·공동체)들에 의해 공동으로 통제되고 분배되는 구조”라며 “시장 주도(미국)와 국가 주도(중국) 모두 결정권을 시민에게 두지 않는다. 양극화된 두 모델 사이에서 시민 주권에 기반한 에이아이는 이 시대 시급한 제3의 선택지”라고 말했다. 송호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