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독일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로고. EPA 연합뉴스 광고 하네스 모슬러(강미노) | 독일 뒤스부르크에센대 정치학과 교수광고 독일 정치가 전례 없는 충격에 휩싸였다.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독일대안당)이 최근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30%에 육박하며,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의 기독민주연합(CDU·기민련)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이 정도 극우의 약진이 유럽에서 더는 낯설지 않다고 해도, 나치의 과거를 참회하며 ‘방어적 민주주의’를 헌법의 뼈대로 삼아온 독일이기에 그 무게는 다르다. 역설적이게도, 이민·치안·소득·고용 같은 객관적 지표는 그동안 나빠지지 않았거나, 오히려 회복됐는데도 독일대안당의 지지율은 10%대에서 30% 가까이 치솟았다. 사람들을 극우로 떠민 것은 악화한 ‘현실’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체감’이며, 더 깊게는 기성 정치에 대한 ‘신뢰의 고갈’이다. 바로 이 불안이야말로 독일대안당의 지지를 길어 올리는 저수지다.광고광고 더군다나 기성 정당의 오판이 그 저수지를 더 키웠다. 2025년 초, 독일대안당에 쫓기던 기민련은 그 기세를 꺾겠다며 도리어 극우의 핵심 의제인 ‘이민 제한’을 선제적으로 끌어안았고, 이주 통제 법안을 독일대안당의 찬성표에 기대어 밀어붙이기까지 했다. 기민련이 극우와는 손잡지 않는다는 ‘방화벽’을 스스로 허물어 극우를 주류화하는 데 기여했다. 그 결과 독일대안당은 1위로 도약했고, 기민련은 추격자로 전락했다. 이런 망신에서 조금은 배운 듯, 기민련은 최근 독일대안당을 비판적으로 해부한 36쪽짜리 안내 책자를 만들어 전 연방의원에게 돌렸다. 책자에는 빈칸만 채우면 되는 ‘독일대안당 탈당계’ 서식이 동봉됐고, 이를 곱게 포장해 부치는 장면을 익살스레 연출한 영상까지 곁들였다. ‘부끄럽거든 여기 서명하라’는, 다분히 조롱조의 선전이었다. 책자는 법치와 헌법기관을 겨냥한 공격, 반유대주의적 서사, 나치 범죄의 축소, 소수자 추방 계획 등 독일대안당의 정책과 지도부의 망언을 출처와 함께 조목조목 짚었다. 독일대안당의 창당 주역이자 당 공동대표를 지낸 알렉산더 가울란트가 “히틀러와 나치는 천년이 넘는 성공적 독일 역사에서 한낱 새똥에 불과하다”고 한 발언, 튀링겐주의회의 당 의장인 비외른 회케가 베를린에 있는 홀로코스트 추모비를 “치욕의 기념비”라 한 망언, 핵심 인사들이 소수자 추방을 ‘재이주’로 미화한 정황을 직접 인용해 들이댄다. 무너뜨린 방화벽을 제 손으로 다시 세워, 독일대안당을 다시 비주류화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뒤늦었지만, 보수 본류를 자임한 정당으로선 의미가 컸다.광고 그러나 한계도 분명하다. 먼저, 책자는 독일대안당의 헌정 파괴적·반민주적 행태를 체계적으로 부각하면서도, 여성 차별이나 성소수자를 겨눈 혐오에는 입을 닫았다. 보수 표밭을 의식한 기회주의적 편집일 수도, 기민련 자신의 한계일 수도 있으나, 어느 쪽이든 자유민주주의 정당으로서는 한참 모자라다. 또한 본래 독일대안당 같은 극우가 즐겨 쓰는 조롱과 희화화를 똑같이 끌어다 쓴 점도 문제다. 민주 진영이 그 저열한 방식을 흉내 내는 순간 자유민주주의의 도덕적 정당성은 오염되고, 극우는 이를 도리어 ‘피해자 코스프레’의 빌미로 삼아 지지층을 더 결집시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폭로만으로 극우를 이길 수는 없다. 그럼에도 적을 또렷이 호명하고 경계선을 긋는 일은, 충분치 않더라도 이 다차원적 싸움에서 양보할 수 없는 최소한의 전제다. 독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극우가 자라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여기서 흔한 함정은 선을 그으면 지지층 일부가 등을 돌릴까 두려워하는 심리다. 그러나 그 두려움이야말로 오판이며, 선을 흐릴수록 사태는 악화할 뿐이다. 그러니 음모론과 막말과 혐오를 절대 웃어넘기지 말아야 한다. 다만 조롱이 아니라 사실에 근거한 체계적인 폭로와 비판으로, 상대에 대한 멸시가 아니라 진정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로 맞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