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7일 대전 유성구의 한 장례식장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사업장 폭발 참사 희생자의 발인이 동료들의 배웅 속에서 엄수되고 있다. 연합뉴스광고상여 나가는 곡소리가 들렸다. 참사 엿새 만의 발인이었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빈소 밖에서는 한화 동료들이 고인을 기다렸다. 그룹 회장의 조화도 대통령·국무총리 것과 나란히 빈소에 서 있었다.“당신, 발 그래서 어떻게 가시나.”환갑 앞둔 남편의 영정을 앞세우고 걷다 아내는 다친 발 걱정을 했다. 보기 힘든 그 발로 저승길 어찌 가나 안쓰러워 울었다. 전날 입관식 땐 가족들의 비명이 장례식장 공기를 갈랐다. 상여가 운구차에 실리고 ‘마지막 인사’의 순간, 가족들은 무너졌다. 아들들은 아버지 관을 부둥켜안고 눈물로 “잘가요, 잘가요” 만지고 또 만졌다. 그 고통을 지켜보던 동료들은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광고7일 오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폭발 참사 희생자 3명의 발인이 대전의 한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3명의 발인식은 아침 6시, 오전 9시30분, 낮 12시 차례로 진행됐다. 50대 희생자 중 1명의 발인은 전날 이뤄졌고, 20대 희생자 중 1명의 장례는 다음 날 본가가 있는 울산에서 마무리된다.이날 가장 먼저 진행된 30대 희생자의 발인식에서도 유족들은 상여를 붙잡고 괴로워했다. “이렇게 가면 어떻게 하냐”는 통곡이 부모만 두고 떠나는 젊은이 뒤를 쫓았다. 며칠 전 미리 화장한 20대 희생자의 발인은 더 쓸쓸했다. 청년은 함에 담긴 채 아빠 차를 타고 장지로 떠났다. 희생자들 중 가장 고참인 50대 희생자의 발인 때는 여승주 한화그룹 부회장(사업부문)도 자리를 지켰다.광고광고7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폭발 사고 참사 희생자 3명의 발인이 끝난 장례식장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이재명 대통령, 김민석 국무총리 이름의 조화가 나란히 남아 있다. 최예린 기자이들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사업장의 56동 ‘화약 세척실’에서 일하다 지난 1일 일어난 폭발 화재로 현장에서 숨졌다. 주검 훼손이 심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디엔에이(DNA) 분석으로 이틀 뒤에야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고가 난 56동은 이 사업장 다른 건물들과 함께 1970년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숨진 이들은 56동에서 고체연료인 로켓 추진제(화약)를 만들 때 쓰는 모든 설비·용기·공구 등에 묻은 화약을 닦아내는 일을 해왔다. 희생자 중 3명은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20대 후반, 30대 초반 청년이었다.신원 확인과 유족 협의 과정으로 장례 일정이 미뤄져 마무리까지 일주일이 걸렸다. 빈소엔 여 부회장과 이용철 방위사업청장,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유성갑 지역구) 등이 다녀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손재일 대표이사와 가재웅 대전사업장장은 장례 내내 빈소에 있었다. 이 회사와 ㈜한화의 전략부문 대표이사인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빈소에 오지 않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담당하는 화약 사업은 한화 그룹의 뿌리이기도 하다. 한화(한국화약)의 창업주인 현암 김종희 회장은 다이너마이트를 처음 국산화한 인물이다. “99%도 안 된다. 100% 정확해야 한다. 약속된 시간에 약속된 장소에서 반드시 폭발하는 화약처럼”이란 말과 ‘신용과 의리’란 사훈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현장] “당신, 다친 발로 어찌 가시나”…‘한화에어로 참사’ 통곡의 발인식
상여 나가는 곡소리가 들렸다. 참사 엿새 만의 발인이었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빈소 밖에서는 한화 동료들이 고인을 기다렸다. 그룹 회장의 조화도 대통령·국무총리 것과 나란히 빈소에 서 있었다. “당신, 발 그래서 어떻게 가시나.” 환갑 앞둔 남편의 영정을 앞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