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숙련 작업자가 금속 부품을 용접하는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광고“전로에서 쇳물이 튀는 소리의 높낮이, 불꽃이 퍼지는 각도, 작업장 내부의 미세한 열기 등 70여 가지 미묘한 징후를 오감에 의존해 판단했었죠.” 이영진(58) 취련사는 포스코가 제철 기술의 미래세대 전수를 목표로 자체 선발한 29명의 명장 가운데 한명이다. 취련은 고로에서 막 나온 쇳물에 산소를 불어 넣어 불순물을 제거하고, 용도에 맞는 쇳물로 성질을 바꾸는 제강 공정 핵심 작업이다. 불꽃 색깔만 보고도 섭씨 1600∼1700도에 이르는 온도를 정확히 읽어내야 하고, 쇳물의 빛깔, 소리, 온도, 불꽃 모양 등을 고려해 산소 취입량과 시간을 결정한다. 이 취련사는 한겨레에 “기술은 매뉴얼로 가르칠 수 있지만, 쇳물 상태를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감각은 긴 시간의 축적이 필요하다”고 했다. “후배들이 때로는 그 배움과 축적의 시간이 길어지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후배들이 긴 호흡으로 쇳물과 대화하듯 현장을 관찰하게 만드는 것, 즉 기술을 넘어선 장인 정신을 심어주는 과정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포스코는 현장을 가장 잘 아는 기술자들의 경험, 직관, 지식과 기술을 결합하는 ‘스마트 팩토리’ 작업을 2010년대부터 꾸준히 해왔다. 포스코 관계자는 “전로 상태를 결정하는 주요 변수를 데이터화하고, 30년 이상 숙련자의 작업 노하우를 모방해 최적의 결과값을 뽑아내는 딥러닝을 진행해왔다”고 설명했다. 이제 명장의 오감은 작업자가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최적의 공정을 수행하는 ‘전로 원터치 조업’으로 스마트화했다. 작업자에 따른 품질 편차가 사라졌다고 한다.광고포스코의 연주공정. 연주공정이란 용광로에서 녹인 쇳물을 일정한 틀에 넣고 연속으로 굳혀 단단한 강철 판이나 블록(반제품)으로 만드는 공정을 말한다. 포스코 제공 한국은 제조업 강국이다. 국내총생산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두번째로 높다. 글로벌 핵심 공급망 지위를 구축해 미-중 무역전쟁과 반복되는 지정학 위기에도 버티는 힘이 세졌다. 제조업 현장에는 포스코 명장처럼 수십년 경험을 통해 몸에 새겨진 감각, ‘암묵지’로 세계 최고 수준 제품을 만들어내는 장인, 명장들이 있다. 인공지능(AI·에이아이)이 사무실과 생산 현장에서 공존하거나 인간 노동을 대체하는 흐름이 본격화하고 있지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제조 암묵지만큼은 아직 인간의 영역이다. 한국 제조 경쟁력을 떠받치는 2차 베이비붐 세대(1964~1974년생) 숙련공 은퇴가 본격화하고 있다. 대기업은 말이나 매뉴얼로 전수되지 않는 암묵지를 기업 경쟁력의 핵심으로 보고 보존·전수 방안을 고민해왔지만, 상당수 중소 제조업체는 핵심 인력이 정년퇴직하는 1~2년 뒤를 기약할 수 없다. 정부가 몸으로 체득한 제조 암묵지를 ‘국가 핵심자산’으로 규정하고 확보에 나선 배경이다. 산업통상부는 “계량화되지 않은 장인·숙련공의 작업 요령, 판단 기준, 감각적 노하우 등 제조 암묵지는 전수가 쉽지 않아 은퇴와 함께 단절·사장될 위기에 있다”며 지난 4월 제조 암묵지 기반 인공지능 모델 개발 사업을 시작했다. △자동차 △조선 △철강 △기계 △전자(반도체·디스플레이 포함) △바이오·화학 △방산 △뿌리(주조·금형·용접·표면처리 등) △섬유 등 핵심 분야 제조 명장의 암묵지가 담긴 ‘비정형 데이터’를 확보한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 암묵지 단절 위기에 처한 중소기업이 주요 대상이다. 산업부는 “제조 명장의 경험·직관·판단 등이 녹아든 제조 암묵지를 활용한 제조 분야의 인공지능 전환(AX) 가속화”를 사업 목표로 제시했다. 30개 정도 과제를 선정해 과제당 16억원을 지원한다.광고광고 미묘한 직관적 판단과 섬세한 손끝 노동을 디지털 데이터로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다.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산기평)이 제조 암묵지 확보 사업 심사와 평가를 맡았다. 관건은 동작, 소리, 진동, 판단 같은 계량화하기 어려운 비정형 데이터를 어떻게 확보하고 인공지능에 학습시키느냐다. 명장의 암묵지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데이터들의 맥락이 숨어 있다. 연관성을 가진 영상, 음성, 이미지 등 다양한 데이터(멀티모달 데이터)를 시계열로 추출하고 정제해야 한다. 진종철 산기평 제조에이엑스확산정책실장은 “업종별 암묵지에 맞는 데이터 형식이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뿌리산업에서 주물이나 표면처리는 손끝 감각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날씨, 습도 등과 연결된 감이다. 자동차 생산라인에서 발생하는 진동과 소리로 라인에 발생한 문제를 파악하는 엔지니어도 있다. 바닷가 조선소는 비가 오면 습도가 확 올라간다. 내부에 기포가 생기며 땜질이 불량해진다. 숙련자는 이를 고려해 평소보다 땜질양을 늘린다고 한다. 진 실장은 “그날의 날씨, 온도, 습도, 소리, 용접봉의 물성값 등 연관 데이터가 있다. 여기에 더해 그날 명장이 평소와 다르게 어떤 방식으로 작업했는지 그 과정과 결과물을 인공지능이 학습할 수 있는 형태로 수치화가 가능하다. 명장의 암묵지를 학습한 인공지능 모델의 ‘판단’에 따라 비숙련자가 동일한 작업을 수행했을 때 얼마나 유사한 결과물이 나오는지 비교·검증하게 된다”고 했다. 정부는 제조 암묵지 확보가 ‘인간 노동 대체’가 아닌 사라질 위기에 처한 ‘핵심기술 확보’ 차원이라고 강조한다. 노동계는 방향은 공유하지만 방법에는 우려를 나타낸다. 한국노총은 5월12일 산업부가 개최한 제조 암묵지 관련 노사 의견 청취 간담회에서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경쟁국의 에이아이 도입에 따른 제조업 위기에 직면해 있다. 에이아이를 제조업 혁신에 활용하려는 정부 정책 방향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일자리 축소 등 구조적 변화에 대한 사회적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암묵지 데이터 수집·활용 기업의 이익 독점 △암묵지 추출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개인정보·사생활 노출 △에이아이 최적화 작업 모델을 기준으로 한 인사평가(전환배치·해고 등) 가능성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광고 지난 4월 경남 창원에서 열린 제조 암묵지 사업 영남권 설명회에 참석했던 솔루션 개발업체 박아무개 대표는 한겨레에 “사업 취지는 좋지만 평생 쌓아온 자신의 제조 노하우를 공개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약속이나 방향성이 먼저 논의됐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사업 성격이 암묵지 인공지능 모델 개발보다는 일단 암묵지 데이터 확보부터 하겠다는 취지로 보인다”고 했다. 서울에서 열린 수도권 설명회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나왔다. 한 참석자는 “암묵지 데이터는 회사 노하우가 담긴 대외비인데 공유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다”고 했다. 설명회에 참석했던 서완석 대한민국명장회 회장은 한겨레에 “기업에 속한 산업명장의 경우 보안 문제 등으로 참여하기 어려울 것이다. 참여하더라도 한명의 명인이 수십년 쌓아온 방대한 암묵지 가운데 정량적으로 어느 범위, 어느 수준을 기준으로 수집하겠다는 것인지 모호하다”고 했다. 산기평 쪽은 “명장의 수준을 완벽히 대체할 수는 없다. 특정 기업이 독점하는 형태는 지양하고, 국가 차원 데이터로 관리하자는 취지다. 암묵지 데이터 활용은 제공자 등과 협의해 결정하게 된다”고 했다. 지난 3월 출범한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에이아이 전환에 따른 노사상생위원회’는 앞으로 인공지능 도입에 따른 고용 불안 해소, 새로운 고용 창출, 초과이익 공유 방안 등을 논의하게 된다. 한국노총은 “노동자의 숙련과 경험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닌 오랜 시간 축적된 노동의 결과다. 산업 경쟁력과 노동권 보호가 함께 가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제조 명장의 오감을 추출하는 ‘암묵지 AI’…이 노동은 누구의 것인가
“전로에서 쇳물이 튀는 소리의 높낮이, 불꽃이 퍼지는 각도, 작업장 내부의 미세한 열기 등 70여 가지 미묘한 징후를 오감에 의존해 판단했었죠.” 이영진(58) 취련사는 포스코가 제철 기술의 미래세대 전수를 목표로 자체 선발한 29명의 명장 가운데 한명이다. 취련은 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