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5공피해자단체연합회와 국가폭력피해범국민연대가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스타벅스 광화문점 들머리에서 스타벅스코리아의 이른바 ‘탱크 데이’ 마케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광고 신진욱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광고 스타벅스 ‘5·18 탱크 데이’ 이벤트가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데 이어, 사건의 배경과 함의, 대책을 놓고 토론이 진행 중이다. 특히 이 사건은 국가폭력과 인권유린을 희화화했다는 점에서 중대한 사안이면서도, 세련된 커피 브랜드 프로모션이라는 형식을 띠었다는 점에서 여러 생각거리를 낳는다. 이 사건은 일회적 일화가 아니라, 더 넓은 거시적 구조 안에서 발생했다. 무엇보다, 정용진 회장을 중심으로 기업 브랜드를 극우 정치와 연결해 온 맥락이 있다. ‘멸공’ 해시태그, 극우 집회 슬로건인 ‘프리덤 이즈 낫 프리’(Freedom Is Not Free) 티셔츠 게시, 미국 마가(MAGA) 진영 한인 단체인 ‘빌드업 코리아’ 행사에 스타벅스 커피 후원 등 문화·소비·스포츠를 통해 극우 상징과 메시지를 확산시킨 많은 전례가 있다.광고광고 또 다른 맥락은, 이명박 정부 시기 ‘일베’ 등장 이후 계속된 극우·혐오 놀이의 일상화다. 노무현 대통령 조롱, 세월호 유가족 앞 ‘폭식 투쟁’처럼 혐오가 유희의 형태로 일상 문화에 스며들어 왔다. 더구나 이번 사태는, 12·3 내란을 겪은 뒤에 독재국가의 학살과 고문을 미화하는 메시지가 대기업의 대중 마케팅까지 침투한 것이어서, 그 의미가 중대하다. 반면, 밈·유머·패러디 같은 표현 형식은 깃털처럼 가볍다. 이런 가벼운 행동이 어떻게 사회를 위협할 수 있을까? 이를 이해하려면 21세기 극우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 세계의 극우는 두 양상으로 나타난다. 구극우는 명백히 극단적 언어와 주장, 폭력을 드러낸다. 반면, 신극우는 극단/정상, 불법/합법의 경계에서 사회의 가치와 문화, 세계관을 서서히 잠식한다.광고 특히 최근 극우 행동의 핵심은 ‘모호성의 정치’다. ‘아이러니의 무기화’는 표면 의미와 실제 기능의 간극을 활용해 금지된 메시지를 발화한다. ‘탱크’, ‘책상에 탁’, ‘503’, 손가락 모양 같은 숫자, 단어, 밈, 몸짓은 겉으론 평범해 보이지만, 극우 생태계 내부자들끼리는 그 의미가 공유된다. 마치 개만 들을 수 있는 주파수의 호루라기와 같다고 해서, ‘도그 휘슬’이라고 부른다. 왜 이런 식으로 소통할까? 무엇보다, 처벌과 비난을 피하고 의도를 부인할 출구를 설치하기 위해서다. 또한, 대중의 접근성을 높여 극우·혐오 담론을 재밌게 생산·소비할 수 있다. 정치적 효과도 크다. 법적·도덕적으로 금지된 주장과 허위정보를 은밀히 소통할 수 있고, 그런 가운데 집단 정체성과 결속을 강화하고 참여자를 확대할 수 있다. 이 같은 암시적 전략은 명시적 폭력 못지않게 위험하다. 이번 ‘탱크 데이’ 사건의 가장 위험한 지점은 ‘금기 파괴’(taboo-breaking)다. 반사회적 행동임에도, 이는 사회의 정상적 일부, 나아가 주류로 진입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수용할 수 있는 것’과 ‘수용 불가한 것’, ‘상상 가능한 것’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 ‘말할 수 있는 것’과 ‘감히 말할 수 없는 것’의 경계를 무너뜨려 사회의 인지적 지도를 재구성한다. 사람들은 처음엔 경악하지만, 점차 담담해지고, 나중엔 동요한다. 그렇다면, 스타벅스 사태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오스트리아 언어학자 루트 보다크(Ruth Wodak)에 따르면, 신극우 전략은 ‘도발-부인-피해자화-전치-주류화’의 패턴을 보인다. 계산된 모호성으로 도발적 메시지를 던지고, 비난에 처하면 의도성을 부인한다. 제재가 가해지면 ‘전체주의’, ‘파시즘’을 비난하며 자신을 억압받는 피해자로 만들고, 쟁점을 ‘표현의 자유’로 전치하여, 자신들의 도발을 사회가 관용하게 만든다. 한국 사회는 이 모든 단계를 압축적으로 거치고 있다. 12·3 내란 직후처럼, 극우 세력은 빠르게 결집해서 반격에 나섰다. 스타벅스는 궁지에 몰렸지만, 반민주 정치는 공세 중이다. ‘5·18은 폭동’이라는 밈을 이토록 맘껏 발산한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일 것이다. 그동안 ‘감히 말할 수 없었던’ 이 텍스트가, 제1야당과 극우 리더들의 엄호하에 우리 사회 담론장을 당당히 활보하게 된 것이다.광고 나아가, 허위 사실, 악의적 이미지, 조작된 영상과 사진이 대량 유포됐다. 5·18 항쟁이 북한의 지령을 받았다는 가짜 기사 이미지가 유포됐고, 시민들이 탱크를 몰고 계엄군을 향해 돌진하는 조작 영상물, 전두환이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5·18은 폭동”이라고 말하는 인공지능(AI) 영상물도 퍼졌다. 스타벅스 로고가 박힌 탱크가 국회를 포격하여 초콜릿색의 피가 퍼지는 영상, 태극기·성조기를 꽂은 스타벅스 탱크가 중국, 북한 사람들을 깔아 죽이는 이미지도 돌고 있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법적 규제는 그 핵심 부분이다. 많은 민주국가는 극단주의 예방·처벌 법제를 발전시켰다. 예컨대, 독일 형법 86조와 130조 ‘대중선동죄’, 오스트리아의 ‘금지법’, 프랑스의 게소법, 이탈리아의 만치노법, 캐나다 형법의 증오선동 금지 조항 등은 모두 반인륜적 국가폭력의 부정·폄훼·찬양·정당화, 극단주의 언어·복장·상징의 제작·사용·유포를 엄금한다. 최근엔 디지털 환경에 대응하는 정책이 확산하고 있다. 독일의 네트워크집행법과 오스트리아의 소통플랫폼법은 인터넷·에스엔에스(SNS) 플랫폼이 허위 정보, 증오·폭력 선동, 극단주의 주장과 상징에 대한 신고·검증 체계를 마련하고, 불법 콘텐츠를 신속히 삭제하도록 했다. 유럽연합(EU) 디지털서비스법도 검색엔진, 에스엔에스, 호스팅 서비스 등 여러 플랫폼에 유해 콘텐츠 리스크 평가와 대응 체계를 구축할 의무를 부과했다. 그러나 법적 규제는 다른 많은 사회적 대응과 함께 가야 한다. 오늘날 극우 생태계는 매우 탈중심적이고, 레저·엔터테인먼트 등 복합 기능과 뒤섞여 있으며, 행위 전략은 암시적이다. 또한, 규제가 정교해질수록 언어와 행동은 더 암호화될 것이다. 그러므로, 헌정에 대한 명시적 위협은 법과 정부의 힘으로 막되, 회색 지대에서 움직이는 다수의 행위는 다른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 왕도는 없다. 보이콧 같은 시민행동, 민주시민·역사 교육, 미디어 규범 등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 모든 실천은 지금 우리 사회가 놓인 역사적 상황에 대한 명확한 인식에 기초해야 한다. ‘5·18 탱크 데이’는 사회 저변에서 ‘87년 합의’가 도전받고 있다는 징후다. 이것은 문화투쟁, 가치투쟁이다. 민주주의를 방어하는 능동적 힘을 키워야 한다. 우리 민주주의에 강한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