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도로는 인간-비인간 관계의 그물망을 재편성하는 강력한 행위자다. 미국 와이오밍주의 큰뿔양은 차에 묻은 도로 소금을 핥아 먹어 소듐 필요량을 채운다. 곰출판 제공 광고 삼색제비는 날개가 짧아졌다. 40년 동안 미국 네브래스카주의 고속도로 다리 밑에 둥지를 튼 제비를 세고 잰 한 과학자 부부가 발견한 사실이다. 유난히 도로 주변에 많이 사는 이 새는 로드킬로 자주 희생된다. 긴 날개는 빠르지만 급선회에 불리해서 쌩쌩 달리는 트럭 사이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낮다.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자연선택이다. 도로는 동물의 유전자를 침입했다. 이 책은 1993년 하버드대 경관생태학자 리처드 포먼이 이름 붙인 ‘도로생태학’을 소개하면서, 우리에게 배경으로만 존재했던 도로가 실은 동물의 죽음과 진화에서 인간 사회의 구조까지 조종하는 강력한 행위자임을 보여준다. 미국에서 포장도로는 국토 면적의 1%에 불과하지만, 소음과 오염, 서식지 단절 등 도로의 영향을 받는 면적은 20%에 이른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에게 도로가 연결과 탈출이라면, 다른 생물에게는 죽음과 분할이다”. 1924년 6월13일, 생물학자 데이턴 스토너와 릴리언 부부가 아이오와주의 도로를 480km 달리며 죽은 동물을 센 날이 도로생태학의 생일이다. 그 뒤 도로는 넓어지고 곧아졌고, 자동차는 빨라졌다. 갈수록 도로는 죽은 동물의 피로 물들었다. 가장 많이 죽는 것은 사슴이 아니라 두꺼비와 거북과 도롱뇽이다. 텍사스의 한 도로에서 수거된 거북은 암컷이 345마리, 수컷이 5마리였다. 알을 낳으러 길을 건너는 건 암컷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죽음을 잘 보지 못한다. 까마귀와 독수리와 코요테가 사체를 재빨리 치우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청소부들의 세계를 ‘네크로바이옴’이라 부른다. 이 세계에서 자동차는 핵심종이다. 광고 미국 조지아주의 도로를 상자거북이 건너고 있다. 로드킬의 대다수는 사슴이 아니라 두꺼비와 거북과 도롱뇽이다. 곰출판 제공. 그러나 도로는 치어 죽이는 것만으로 세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공포영화의 첫 장면으로 나타나는 ‘사슴-차량 충돌’은 의외로 최근에 시작된 문제다. 과거에는 과도한 사냥으로 사슴 개체 수가 줄었기 때문에 실은 자동차가 들이받을 사슴이 없었다. 그러다가 신설된 도로를 타고 생긴 도시 근교의 주택지구를 중심으로 사슴이 좋아하는 숲과 초원 사이의 전이지대가 생겼다. 도로는 이런 방식으로 사슴 개체수를 늘렸고, 지금 사슴은 토끼풀과 잔디로 차려진 갓길의 진수성찬을 만끽하다 차에 치여 죽고 있다. 와이오밍주의 노새사슴은 먹이를 찾아 매년 480km를 왕복하는 유목민이다. 어미가 새끼에게 길을 가르쳐 머릿속 지도가 대대로 전승된다. 후천적으로 학습해 공유하는 문화의 일종이다. 그 문화를 고속도로가 고사시켰다. 사슴은 차량 간격이 30초 미만이면 건너지 않는다. 그러나 교통량이 불어난 고속도로에는 6.5초에 한 대꼴로 차가 지났다. 그해 한 무리의 40%가 사라졌다. 책에 인용된 연구자의 말이다. “그 사슴들은 차에 치여서 죽은 게 아니에요. 영양실조로 죽었습니다.” 아스팔트가 없어도 도로는 동물의 삶터를 밀어버린다. 한 연구팀은 숲속 나무에 스피커를 걸고 국립공원 도로에서 들리는 차 소리를 틀었다. 새들이 떠났고, 남은 새는 야위었다. ‘유령 도로’라 불리는 실험이다. 광고광고 도로는 동물을 죽이기도 하지만 가두기도 한다. 로스앤젤레스는 다차선 고속도로가 감싸고 있다. 산과 숲은 고속도로에, 동물은 움직이는 울타리(차량 대열)에 갇힌다. 이곳에 사는 쿠거(푸마) 또한 각각의 섬에 갇혀 살고, 용기를 내서 울타리를 넘어야 짝을 만날 수 있다. (용기가 없는 로키산맥 회색곰 개체군은 도로에 의해 나뉘어 아주 작은 유전자 조각만 분석해도 곰이 도로의 어느 편에서 태어났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할리우드’ 언덕으로 유명한 그리피스 공원에는 그렇게 쿠거 ‘P-22’가 들어왔다. 시민들은 맹수와 함께 산다는 신선한 기쁨을 느끼면서도 저 고속도로가 동물의 방벽임을 깨달았다. 대대적인 모금 운동이 벌어졌고 왕복 10차선 고속도로를 건너는 세계 최대의 ‘리버티 캐니언 생태통로’가 지어졌다. 닭은 왜 길을 건넜을까? ‘반대편으로 가려고’라는 뻔한 대답을 기다리는 미국의 오래된 농담이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우리는 도로를 강물처럼 경로가 고정되고 침범할 수 없고 영원히 머무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미국 고속도로는 들소 떼가 간 길을 토착민이 자신의 것으로 삼았고 그 위를 유럽인이 시멘트로 바른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물어야 한다. 왜 도로가 땅을 건넜을까?광고 도로생태학은 다른 생물종을 상상하는 행위다. 인간이 지은 세계를 비인간의 눈으로 보는 일, 과학을 통한 공감의 발현이다. 개구리는 차 앞에서 멈추지 않고, 사슴은 기회를 봐서 뛰어들고, 브라질의 큰개미핥기 에벌린은 조심스러워서 활동 영역이 쪼그라들었고, 삼색제비는 날개를 바꾸었다. 동물뿐만이 아니다. 고속도로는 빈곤층 주거 지역을 재개발하거나 격리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흑인이 백인보다 고속도로 근처에 살 가능성이 40% 높고, 라틴계는 60%, 아시아계는 75% 더 높다. 자동차가 내뿜은 이산화황, 질소산화물, 미세먼지 등 유독물질에 비백인의 신체가 더 많이 노출된다. 고속도로에서는 사체들을 중심으로 한 생태계(네크로바이옴)가 꾸려진다. 핵심 행위자는 자동차다. 미국 워싱턴주 메도 밸리의 고속도로에서 흰머리수리가 사체 먹이를 먹고 있다. 곰출판 제공 지금도 곳곳에 생태통로가 지어진다. 회색곰을 위한 육교, 거북이가 지나가는 터널, 원숭이가 도로를 건너게 하는 그물 밧줄로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고, 동물들도 자신을 위한 도로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태통로는 도로가 일으키는 “파괴를 감추고 정당화하는 무화과 나뭇잎”이 되는 것은 아닐까? 아담과 이브가 부끄러움의 원인은 놔두고 가리려고만 했듯이, 도로의 파괴성을 감추는 ‘착한 알리바이’ 말이다. 살리시-쿠트니 부족은 도로란 어디까지나 땅과 그 땅의 성스러운 기운에 응답하고 존중하는 방문객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방문객은 주인 행세를 하지 않는다. “도로는 땅을 정복하는 대신 그 땅에 속해 있을 때만 옳다”. 동물들에게 도로를 비가시화하고 그들의 감각에 맞게 생태통로를 짓고, 빈민 주택지구의 하늘을 뒤덮은 위압적인 고가도로를 해체하는 일은 그런 점에서 매한가지다. 제비의 날개는 도로에 맞춰 짧아졌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남종영 환경 논픽션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