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듀기드 영국 이오스(EOS) 스튜어드십 책임자가 지난달 22일 런던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 하고 있다. 광고 2016년 도입된 한국 스튜어드십 코드가 제정 10년 만에 처음으로 개정돼, 내년 1월부터 적용을 앞두고 있다. 기관투자자가 ‘집사’(스튜어드)처럼 투자 대상 기업을 살피고 개선을 요구하도록 하자는 이 규범은, 지난 10년간 사실상 잠들어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민연금이 위탁운용사에 자산을 맡기면서 의결권까지 넘길지, 재벌·금융그룹 계열 운용사의 이해상충은 어떻게 풀지, 개별 기관의 힘이 부칠 때 함께 목소리를 낼 길은 있는지. 개정안의 실제 적용에 앞서 쟁점마다 이런 물음표가 붙어 있다. 지난달 22일 영국 런던의 이오에스(EOS) 사무실에서 스튜어드십 책임자 브루스 듀기드를 만났다. 이오에스는 글로벌 자산운용사 페더레이티드 허미스의 스튜어드십 전문 조직으로, 연기금·보험사·재단 같은 자산소유자를 대신해 기업을 관찰하고 대화하며 의결권 행사를 집행하는, 말하자면 ‘주주권 대행’의 원조 격인 기관이다. 전체 인원 약 45명 가운데 30명의 전문인력이 연간 450~500개 기업을 상대한다. 2025년 한 해 859개 기업과 3849건의 이슈·목표를 놓고 대화했고,1만3516회의 주주총회에서 고객의 의결권 행사를 집행했다. 자문하는 기관의 운용자산은 2조4천억달러(약 3300조원)에 이른다. 듀기드와 대면 인터뷰를 한 뒤, 한국 관련 쟁점에 대해서는 서면으로 추가 답변을 받았다. 인터뷰에서 확인한 시사점은 크게 세 가지다.광고글로벌 자산운용사 페더레이티드 허미스의 스튜어드십 전문 조직인 이오에스(EOS)의 2025년 활동 실적 이오에스(EOS)의 2025년 의결권 행사 개요 첫째, ‘코드보다 문화’가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한국 기관투자자에게 필요한 단 하나의 변화를 묻자 듀기드는 규정이 아니라 사람을 짚었다. “규제 개혁과 코드 개정은 필요한 틀을 제공할 뿐이다. 스튜어드십이 실제로 의미를 가질지는 국내 기관투자자들의 행동 변화, 그리고 그것을 이끄는 선도적 국내 펀드에 달려 있다.” 아무리 정교한 코드를 만들어도 기관투자자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종이 위의 규범에 그친다는 얘기다. 10년간 코드가 잠들어 있던 한국에겐 뼈아픈 진단이다.광고광고 둘째, 창업자 일가 등 지배주주가 있는 기업에도 공략법은 있다는 것이다. 듀기드는 지배력이 총수 일가에 집중된 한국 대기업에 관여할 때는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사회와 경영진이 지배주주의 이익을 대변하기 쉬운 구조이므로, 관여의 초점을 사외이사에 맞추고, 의제를 ‘소수주주의 언어’—이사회 실효성, 기업가치(밸류에이션)에 미치는 영향, 자사주 소각 같은 자본비용 문제—로 짜라는 것이다. 막연히 ‘지배구조를 개선하라’가 아니라 숫자와 주가로 말하라는 조언이다. 그는 이사의 겸직을 제한하는 한국 규제로 이사 후보군이 좁다는 점도 짚으며, 최근 대기업들이 언어 장벽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이사 영입에 나서기 시작한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셋째, 혼자 힘들면 뭉치고, 뭉칠 힘이 없으면 빌리라는 것이다. 듀기드는 집단적 관여 모델이 “한국에서도 작동할 수 있다”고 봤다. 여러 투자자의 영향력을 한데 모으면 개별 관여의 구조적 한계를 넘어설 수 있고, 일본이 최근 스튜어드십 개정에서 협력적 관여를 명시적으로 장려한 것이 한국에 유효한 선례라는 것이다. 특히 그는 “국민연금 같은 기관의 참여가 정당성과 영향력을 강화한다”고 했다. 다음은 듀기드와의 일문일답이다. 광고 — 한국은 2016년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지만 지난 10년간 사실상 유명무실했다는 평가가 있다. 이제 정부와 정치권이 코드를 전면 손질해 기관투자자의 적극적 이행을 유도하려 한다. 한국 기관투자자가 효과적으로 관여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변화 하나를 꼽는다면? “코드 개혁도 중요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변화는 국내 기관투자자들 사이에 진정한 스튜어드십 문화가 형성되는 것이다. 규제 개혁과 개정된 코드는 필요한 틀을 제공할 수 있을 뿐이다. 스튜어드십이 실제로 의미 있는 것이 될지는 결국 선도적인 국내 펀드들이 뒷받침하는 기관투자자들의 행동 변화에 달려 있다.” — 한국에는 창업주 일가가 지배주주로서 여러 계열사를 지배하는 ‘재벌’이라는 독특한 지배구조가 있다. 소수주주 권리가 제대로 보호되지 않고 기관투자자의 관여도 효과를 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런 기업에는 어떤 관여 전략이 적절한가? “재벌 관여에는 표준적인 지배구조 관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지배력이 창업주 일가에 고도로 집중돼 있고, 흔히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를 통해 유지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사회와 경영진은 모든 주주의 독립적인 관리인이라기보다 지배주주의 이익을 반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관여의 초점을 이사회의 사외이사(독립이사)에 맞추고, 의제를 소수주주에게 와닿는 언어로 구성한다. 광고 이사회 실효성,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 자사주 소각 같은 자본비용 문제, 소수주주의 인식 등이다. 한국에는 재벌 소유구조 외에 이사회 구성에서 비롯되는 문제도 있다. 한 이사가 두 개를 초과하는 이사회에서 일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제 탓에 이사 후보군이 좁고, 언어 장벽과 이사회 대면 참석 문제 등으로 외국인 이사 영입에 소극적이던 기업들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런 제약에도 불구하고 국경 너머로 인재풀을 넓히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 집단적·협력적 관여 모델이 한국에서도 작동할 수 있다고 보나? “작동할 수 있다. 다만 지배주주가 시장을 지배하는 환경에 맞게 조정이 필요하다. 투자자들의 영향력을 한데 모으면 관여의 신뢰도를 높이고 개별 관여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최근 아시아의 흐름도 이를 뒷받침한다. 일본은 최신 스튜어드십 개정에서 협력적 관여 모델을 명시적으로 장려했다. 지배구조와 시장 전반의 문제를 다루는 데 효과적이라고 인정한 것이다. 비슷한 구조적 과제를 안고 있는 한국에 유효한 선례다. 실제 협력은 자본 배분, 특수관계자 거래, 지배구조 개혁과 실효성 같은 구체적이고 파급력 큰 이슈에 집중할 때 가장 효과적이다. 글로벌 투자자와 국내 투자자가 함께 참여하는 것이 중요한데, 국민연금 같은 기관의 참여는 정당성과 영향력을 강화한다.” ― 한국 국민연금은 위탁운용사에 자산을 맡겨도 의결권은 직접 보유한다. 이오에스 구조에서 최종적인 의결권은 누가 갖는가? “고객이 주주권을 보유하고 우리에게 정책 집행을 위임하는 구조다. 자산을 운용사에 위탁한 경우에도 의결권 행사 권한을 운용사에서 회수해 이오에스로 이전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위임은 어디까지나 집행에 관한 것이고, 최종 결정권은 자산소유자인 고객이 갖는다.” ― 자산소유자들이 관여 활동을 직접 하지 않고 이오에스에 아웃소싱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오에스는 페더레이티드 허미스의 스튜어드십 팀인 동시에 제3의 고객을 위한 스튜어드십 서비스 제공자다. 고객 대부분은 자산운용사가 아닌 연기금·보험사·재단 같은 자산소유자다. 자산소유자는 운용사보다 훨씬 긴 시간 지평으로 자산을 바라보고, 능동적 운용만으로는 분산하기 어려운 시스템적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 자산소유자가 자체 팀을 꾸리면 리소스 한계로 극소수 기업밖에 다룰 수 없다. 우리는 30명의 전문인력으로 연간 450~500개 기업을 담당하는데, 이는 대형 자산소유자 포트폴리오 가치의 약 50%에 해당한다. 기업과 질 높은 관계를 유지하며 고위 임원들과 직접 면담할 수 있다. 효율성과 효과성의 문제다.” ― 관여 활동의 성과는 어떻게 측정하나? 성공적인 관여의 정의는 무엇인가? “우리는 항상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관여를 시작한다. 목표를 향한 여정에 4단계 마일스톤이 있다. 1단계는 기업에 우려를 제기하는 것, 2단계는 기업이 문제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 3단계는 기업이 변화 의지를 표명하는 것, 4단계는 기업이 실제로 변화를 실행하는 것이다. 관여가 완료되면 케이스스터디를 작성하고 그 변화가 미래에 가져올 효과도 계산한다. 일반적인 관여는 약 3년이 걸리지만 1~2년에 끝나기도, 6~7년 지속되기도 한다. ‘모멘텀 지표'로 진행 속도를 추적해, 너무 더디면 관여 중단을 결정하기도 한다.” ― 관여할 기업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나? “세 가지 기준이 있다. 첫째는 고객의 보유 지분, 즉 재무적 이해관계의 크기다. 둘째는 해당 기업에서 이슈 자체의 중요성이다. 어떤 섹터에 속해 있고 시스템적 도전이 얼마나 큰지 본다. 셋째는 실제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feasibility)이다. 주주권이 잘 보장돼 있는지, 지배주주가 있어 논의가 어렵거나 국영기업은 아닌지 등이다. 이 세 요소를 종합한 뒤 우리가 특허를 보유한 ‘금융연계성'(financial connectivity) 플랫폼으로 각 기업의 이슈별 재무적 중요성을 분석한다. 인공지능(AI)도 일부 활용하지만, 각 기업의 구체적 맥락에 대한 판단은 우리 팀이 직접 한다.” ― 관여가 잘 진행되지 않으면 어떻게 압박 수위를 높이나? “기본은 기업과의 건설적인 관계다. 우리는 같은 편에 있고 같은 것을 원한다. 그래도 진전이 없으면 단계적으로 강도를 높인다. 첫째, 면담을 강화한다. 빈도를 늘리고 아이아르(IR)팀이 아닌 이사회 멤버, 특히 사외이사와 직접 접촉한다. 둘째, 의결권 행사다. 이사 재선임 반대 등으로 우려의 신호를 보낸다. 셋째, 주주결의안이다. 실제로는 고객(주주)이 제안을 발의하고 우리가 지원하는 방식이다. 넷째, 드물지만 언론을 통해 이슈를 공론화한다. 그래도 접근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면 그 기업은 관여할 수 없는 곳일 수 있다. 그럴 땐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를 낮추거나 관여를 중단한다.” ― 미국에서는 ESG 반발이 거세다. 한국에서도 환경(E)·사회(S)를 과도하게 강조하면 정작 시급한 지배구조(G) 문제가 가려진다는 지적이 있다. 세 요소에 우선순위가 있나? “지배구조는 다른 모든 이슈의 기반이 되는 ‘수평적 토대’라고 본다. 올바른 지배구조가 확립돼야 장기 전략 수립과 자본 배분은 물론, 환경·사회적 리스크를 식별하는 일까지 제대로 할 수 있다. 생물다양성이나 책임 있는 인공지능 같은 새 이슈가 부상하고 있지만, 이 모든 이슈를 잘 관리하는 중심에는 여전히 지배구조가 있다.” 런던/ 글·사진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ESG센터 연구위원 bh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