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광고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최근에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은 남북한의 관계를 동족 관계가 아닌 ‘두개의 적대적 국가 관계’로 규정하며 ‘민족통일’이라는 종래의 이념을 공식적으로 폐기했다. 이 선언이 세계적 화젯거리가 되었지만, 사실 역설적이게도 김정은의 이 성명이야말로 그가 완전한 타자라고 여기는 남한 젊은층의 최근 여론의 흐름과 일맥상통한다. 작년 10월에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실시한 통일의식조사에 의하면, 남한 20대의 무려 50.7%가 통일에 대해 ‘필요 없다’고 보았다. 통일을 필요하다고 보는 20대는 불과 24.4%의 소수에 그쳤다. 통일에 대한 회의 내지 부정, 그리고 분단을 영구적 상황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라는 차원에서 남북한의 새로운 세대들은 서로를 미러링하고 있다.통일 회의론 내지 부정론뿐만인가? 남북한 사이의 경제 격차부터 지정학적 소속의 상이함까지 ‘차이’는 절대적이지만, 묘하게도 이와 동시에 이 두 사회가 겪어온 발전의 궤적은 박정희와 김일성 체제하의 권위주의적 근대화 시절뿐만 아니라 최근에도 계속 서로를 미러링한다. 남한은 최근 국민 전체의 3분의 1이나 주식 투자를 할 정도로 개개인이 각자의 이윤 극대화에 골몰하는 철저한 자본주의적 사회가 되었지만, 북한의 최근 헌법 개정 역시 ‘시장화’와 ‘자본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세금이 없어진 우리나라”(구헌법 제25조)나 “실업을 모르는 우리 근로자들”(구헌법 제29조) 같은 표현들이 삭제되었고, “전반적 무상 치료제를 공고발전”(구헌법 제56조) 역시 “사회주의 보건 제도를 공고발전”으로 수정되었다. ‘무상’이라는 말이 슬그머니 빠진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라는 것이 부자 나라 남한에서는 ‘주식을 통한 개개인의 재테크’인 반면, 상대적으로 가난한 북한에서는 ‘장마당’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두 사회가 큰 틀에서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은 자명해 보인다.광고남북한의 공통점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두 사회의 군사화와 외교·안보 차원의 포지셔닝이다. 6·25 전쟁이라는 용광로 속에서 남과 북에 고도로 병영화된 ‘안보 본위’의 국가가 각각 형성되었다. 이 두 국가는 서로 경쟁하면서 계속해서 서로 비슷한 궤도를 달렸다. 애초 북한이 선두에 섰지만, 결국 둘 다 1960~70년대에 군수공업을 건설했으며, 특히 1970년대에는 비록 소규모일지라도 둘 다 무기 수출까지 하기 시작했다. 둘 다 군사 부문을 통해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취했다. 남한이 북한보다 열세였던 1960년대에는 ‘베트남 특수’와 베트남 파병을 통해 초고속 개발을 이루어냈다. 북한이 남한보다 훨씬 열세에 처하게 된 2020년대에는, 북한 역시 ‘우크라이나 특수’와 우크라이나 파병 등을 통해 국민총생산의 50~80%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는 전쟁 수익을 챙겼다. 병영 국가로서 무기와 군수품, 그리고 군인들의 ‘전쟁 수행 노동’을 수출하는 것은 가장 손쉬운 경제 문제의 해법이다.이런 해법이 가능한 것은 남북한의 외교·안보 차원의 포지셔닝과 직결되어 있다. 남한의 주된 군사 협력 파트너인 미국이 현재 그 패권을 천천히 잃어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한-미 안보·군사 관계가 아직 크게 바뀐 것은 아니다. 이길 수도 없고 큰 손해를 보지 않고서는 발 빼기도 쉽지 않은, 베트남 전쟁과 격이 비슷한 우크라이나 전쟁의 ‘늪’에 빠져버린 러시아 역시 그 위상을 잃어가고 있지만, 북한으로서는 여전히 최적의 군사·안보 파트너다. 한데 군사 부문을 넘어서 남한에도 북한에도 경제 차원의 동북아 역내 파트너들은 사활이 걸린 핵심축이다. 지금이야 일본이 베트남에 밀려 한국의 4위 교역 대상국밖에 안 되지만, 한국 공업화의 도약기인 1970년대에는 대일 교역의 비중이 거의 40%에 달했다. 1970년대 한국의 국외 투자 유치 중 60% 정도는 일본 투자였다. 미국이 군사 차원의 후견국이었다면 일본은 돈줄이었던 셈이다.광고광고1970년대 남한에 대해 일본이 맡았던 경제적 역할을, 지금 북한에 대해서는 중국이 맡고 있다. 2022년의 한 연구에 의하면 2000년 이후 대북 투자의 누적액 중 적어도 57% 정도는 중국 자본이다. 이에 더해 1970년대 남한에는 없었던 ‘국제 제재’라는 새로운 변수가 존재하기에, 제재를 비교적 쉽게 무시할 수 있는 중국이 전체 대북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예 98%에 이른다. 기술이나 교육 분야에서도 중국에 대한 북한의 의존은 눈에 띈다. 박정희·전두환 시절 대일 경제·기술 협력이 한국 자본주의의 기반을 다지는 데 핵심적 구실을 했듯이, 이제 중국은 신흥 국가자본주의 국가인 북한을 세계 자본주의 체제 속에 편입시키고 있다. 이런 구도 속에서 남한이 1990년대 초반 이전까지 ‘북방 국가’들과의 단절 속에서 경제 개발의 가도를 달릴 수 있었듯이 북한 역시 미·일·남한과의 이렇다 할 교류 없이도 고속 자본화의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다.그런데 미·일·남한과의 관계 정상화 없이도 북한의 자본 축적이 가능하다 해도, 일란성 쌍둥이 같은 두 코리아가 서로에게 맞서는 현재의 적대적 공존 구도는 불안해도 너무 불안하다. 냉전 시절에 견주면 오히려 더 불안하다. 냉전 시절 양 진영은 적어도 1960년대 이후 최악의 충돌을 피하면서 접점을 모색하고 있었지만, 신자유주의의 위기이자 각자도생의 시기인 오늘날에는 군사 대국들이 도널드 트럼프 시대의 미국처럼 그야말로 ‘좌충우돌’하는 것이 다반사다. 이란을 불법 공격함으로써 걸프 지역의 미군 기지가 들어가 있는 하위 파트너 국가들을 이란의 보복에 노출시켰던 트럼프 정권이, 과연 비상 상황에서 아랍에미리트나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의 이해관계 이상으로 한국의 이해관계를 고려해주겠는가? 북한 군수복합체의 ‘큰손’ 고객인 러시아와 한국 무기를 대량으로 사주는 폴란드 사이의 대립과 긴장도 현재 거의 준전시 상태에 가깝다.군수 산업 대국인 남북한이 각종 지정학적 대립에 연루된 이상, 한반도 평화는 깨지기 쉽다. 그렇기에 남북한이 ‘동족’이든 아니든 간에, 서로 대립하는 이 쌍둥이 국가 사이의 소통은 무엇보다 절실히 필요하다. 이 소통의 복구야말로 가장 시급한 국정 과제 중의 하나로 여겨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