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목탑 사리구멍 내부의 북쪽 벽면을 덮은 금동판. 두 신장의 모습이 가장 뚜렷하게 남아있다.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광고고대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마천루였던 신라 황룡사 9층 목탑의 숨은 비밀들이 1200여년 만에 드러났다. 목탑 아래 사리(부처와 고승의 유골)를 넣고 봉안하는 사리구멍(사리공) 안의 사방 벽을 온통 금동판들로 뒤덮어 사리공이 거대한 사리함 공간 구실을 하도록 만든 사실이 밝혀졌다. 또 경문왕 12년인 872년 탑을 중수한 기록인 ‘황룡사 찰주본기’를 표면에 새긴 금동사리함의 뚜껑 안쪽과 바닥판 추정 조각에서 ‘金忠’(김충), ‘連昌’(연창) 등 당대 장인들의 이름도 새롭게 판독됐다. 국립경주박물관은 11일 오전 언론설명회를 열어 다음날부터 시작하는 특별전 ‘황룡사, 부처의 사리를 모시다_皇龍奉佛 황룡봉불’의 준비 과정에서 밝혀낸 황룡사 목탑 내부의 사리함들과 장엄구(장식예물)류의 주요 복원 분석 성과를 공개했다.광고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사리를 봉안한 탑 아래 사리구멍(사리공) 내부의 얼개. 구멍 내부의 동서남북 사방 벽에도 신장상 2구가 한면마다 새겨진 금동판 4개를 붙여 사리공 자체가 작은 사리함을 싸안는 또 하나의 큰 사리함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찰주본기’ 기록에서 유리사리병 받침으로 쓰인 ‘금은고좌’란 보물의 실체가 출토품 중 하나인 작은 연꽃받침이란 것도 성분 분석 비교를 통해 확정했다.연기법송이 새겨진 은제 판. 금동팔각당형 사리기 안에서 나왔는데, ‘찰주본기’에 공양물로 기록된 법사리의 실체로 추정된다.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광고광고목탑 터 안에서 나온 금동 팔각당형 사리기.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청동팔각형사리기와 은제 판의 결합 추정 복원도.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연구진은 아울러 ‘황룡사 찰주본기’가 새겨진 금동사리함의 뚜껑 안쪽에서 ‘김충 金忠, 연장 連長, 청선 淸宣’, 바닥판으로 추정되는 조각에서 ‘연창 連昌’이라는 당대 장인들의 이름들을 새롭게 판독해 찾아냈다. 목탑 터에서는 팔각형 건물 모양의 사리기도 나왔는데, 이 사리기의 이중 몸체 사이에서 발견된, ‘諸法因緣生’(제법인연생)이란 연기법송 구절을 새긴 은제 명문판 두쪽이 ‘찰주본기’에서 밝힌 법사리(부처의 가르침을 적거나 새겨 사리처럼 모신 실물)임을 규명한 것도 준비 작업에서 거둔 성과다. ‘찰주본기’에는 경문왕이 사리 100매와 함께 법사리 2종을 추가 봉안했다고 나오는데, 이 은제 판이 그 법사리 실물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광고 이밖에 1960년대 탑 도굴 당시 털렸다가 회수된 중국 연호 ‘중화 3년’이 새겨진 금동사리기는 그동안 탑 안에 실제로 있었는지를 놓고 논란이 이어져왔으나, 이번 조사를 통해 도난당했던 사리기 본체와 사리공 안에서 발견된 뚜껑이 서로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이 금동사리기는 원래 다른 절에서 만들어져 황룡사 목탑 안에 중수 당시 들어가게 된 것으로 확정했다. 황룡사 찰주본기가 새겨진 금동사리함의 바닥 판 추정 명문. ‘連昌’(연창)이라는 사람 이름이 새롭게 확인된다.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찰주본기가 새겨진 금동사리함 뚜껑의 안쪽 명문 부분. 엑스(X)선 사진으로 ‘金忠’(김충), ‘連長’(연장), ‘淸宣’(청선)이라는 신라 장인들의 이름이 확인됐다.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찰주본기는 경문왕 12년인 872년 신라 조정이 황룡사 목탑을 고쳐지으면서 탑 건립 내력과 중수 과정을 새겨 봉안한 기록이다. 선덕여왕 대의 목탑 창건 비화부터 9세기 경문왕 대의 중수 사실, 당시 토목 공사와 사찰 운영을 담당했던 성전(成典) 조직까지 기술한 희귀 사료로 역사적 가치가 지대한 유물이다. 1238년 몽골군 방화로 황룡사가 전소될 때도 화마를 피했는데, 800여년 지난 1964년 도굴됐다가 2년 뒤 회수되는 등 20세기 들어 유별난 수난사를 겪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박물관 쪽은 “전시 준비 작업의 연구 성과들은 황룡사 불사리 장엄이 한번에 완성되지 않고 여러 세대를 거친 불사를 통해 사리와 사리기가 계속 추가되고 재구성됐음을 알려준다”며 “신라 불교문화를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번 특별전은 연구 분석 성과를 반영해 황룡사 목탑 심초석 사리공과 그 주변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를 중심으로, 신라인들이 부처의 사리를 어떻게 봉안하고 장엄했는지를 살펴본다. 세 부분으로 나누어 1960년대 목탑 사리공 조사와 1976년부터 시작된 황룡사 터 발굴 조사에서 확인된 창건기와 중수기의 사리장엄구를 한자리에서 비교할 수 있도록 틀거지를 짰다. 목탑 사리공에서 출토된 금동사리함, ‘황룡사 찰주본기’가 새겨진 금동사리함(보물), ‘중화 3년’이 새겨진 금동사리기, 통일신라 사리장엄구를 대표하는 전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납석제 사리호(보물)·사리기, 합천 해인사 길상탑의 탑지석·소탑 등 117건 322점을 선보인다. 보존 처리를 거쳐 복원한 금동사리함 본체와 사리공 뚜껑 등도 눈길을 끌 듯하다. 광고 전시는 9세기 통일신라 사리장엄의 변화 양상도 조명한다. 전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의 금동사리함과 납석제 사리호를 처음 함께 보여주며, 합천 해인사 길상탑의 탑지석과 소탑, 다라니 신앙 관련 자료를 통해 사리 신앙이 사리와 법사리, 다라니, 소탑을 함께 봉안하는 새 장엄 형식으로 발전하는 과정도 살펴볼 수 있다. 10월11일까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목탑 사리구멍 내부의 남쪽 벽면을 덮은 금동판. 상당 부분이 떨어져 나가 두 신장의 일부분만 볼 수 있다.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목탑 사리구멍 내부의 동쪽 벽면을 덮은 금동판. 훼손이 심해 신장의 전모를 찾아볼 수 없다.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목탑 사리구멍 내부의 서쪽 벽면을 덮은 금동판. 신장이 새겨져 있다.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찰주본기가 새겨진 금동사리함 바깥 면.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찰주본기가 새겨진 금동사리함 안쪽 면.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황룡사, 부처의 사리를 모시다’ 특별전 포스터.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이번 특별전에 처음 출품돼 공개되는 전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금동사리함과 납석제 사리호.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중화 3년’ 명문이 새겨진 금동사리기. 국립경주박물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