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1942년 8월4일, 일본 유학 첫해 여름방학에 귀향한 윤동주(뒷줄 오른쪽)가 고향 용정(룽징)에서 또래 친척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앞줄 가운데는 동갑내기 고종사촌인 송몽규다. 연세대학교 윤동주기념관 소장. 사계절 제공 광고타자기와 컴퓨터의 등장 이후 손글씨 원고는 사라지다시피 되었지만, 지금도 문학관 같은 데에서 작가의 친필 원고를 만나면 울컥 반가운 마음이 들고는 한다. 잘 쓰면 잘 쓴 대로 못 쓰면 못 쓴 대로 육필 원고는 작가의 성정과 글 쓰는 방식, 더 나아가 작품에 관해서도 많은 것을 알려주는 느낌이다. 일례로 단정하게 정리된 윤동주의 시집 원고는 그의 사진들만큼이나 맑고 깨끗한 시인의 됨됨이를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윤동주라고 해서 처음부터 완성된 상태로 원고를 작성했겠는가. 그 역시 다른 모든 문인들과 마찬가지로 숱한 고민과 망설임, 수정의 과정을 거쳐 작품을 마무리했을 것이다. 그렇게 첫 착상에서부터 퇴고를 거쳐 완성된 원고에 이르기까지 동주의 창작 과정을 보여주는 흔적들에 주목한 연구서가 나왔다. 김신정 교수(한국방송통신대 국문과)가 쓴 ‘윤동주의 오래된 노트’는 그가 남긴 습작 공책과 친필 원고 속 메모 등을 통해 시인의 주저와 불안, 모색을 헤아리고자 한다. 동주가 생전에 깔끔한 원고로 정리해서 후배 정병욱에게 맡긴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원래 제목은 ‘병원’이었다. 지금 남아 있는 원고 표지에는 알려진 제목 왼쪽에 세로로 ‘병원’이라고 썼다가 지운 흔적이 희미하게 보인다. 그에 앞서 그가 열일곱살부터 스무살까지 쓴 초고 59편을 ‘나의 습작기의 시 아닌 시’(‘습작기’)라는 제목 아래 모은 원고지 공책, 그리고 그 작품들 가운데 골라서 고치고 다시 쓴 17편을 담은 두번째 공책 ‘창’은 습작기 동주의 노력과 발전을 엿보게 한다.광고‘나의 습작기의 시 아닌 시’에 적힌 ‘호주머니’ 원고. 지우고 고친 흔적이 가득하다. 연세대학교 윤동주기념관 소장. 사계절 제공 가령 ‘습작기’ 공책에 적힌 ‘곡간’(1936)이라는 작품에는 “말탄 섬나라 사람이,/ 길을 뭇고 지남이 이상한 일이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창’에 다시 옮겨 퇴고하는 과정에서는 이 구절이 포함된 연에 모두 취소 줄을 그어 삭제 표시를 했다. 평양 유학 뒤 3년 만에 다시 찾은 고향 간도에서 낯선 면모를 포착하고 언어화했지만 “감당하기 벅찬 현실의 무게” 때문에 삭제를 택했을 것으로 김신정 교수는 짐작했다. 역시 ‘습작기’에 실린 창작 일자 미상의 시 ‘호주머니’와 ‘오줌쏘개디도(지도)’는 거의 개작에 가까운 수정 과정을 보여준다. “가을에는/ 밤 한톨 살작./ 겨울에는 주먹두개 갑북./ 봄에는 버들개지 답답./ 여름에는/ 아무것도 반반.”이라는 ‘호주머니’ 초고와 “엻을것업서,/ 걱정이든,/ 후주머니는,// 겨을만 되면/ 주먹두개 갑북 갑북.”이라는 최종본을 비교해 보라. 1942년 1월24일, 그가 일본 유학을 위해 창씨개명 허가서를 제출하기 5일 전에 쓴 시 ‘참회록’ 원고 하단에는 “그의 복잡한 상황과 번민의 흔적”을 보여주는 낙서가 어지럽게 적혀 있다. 여기에는 ‘힘’과 같은 한글, ‘시’ ‘문학’ 같은 한자, ‘낙서’(落書き) 같은 일본식 한자 및 히라카나, 모른다는 뜻의 중국어 ‘부즈다오’(不知道) 등이 뒤섞여 있어 동주의 착잡한 심사와 함께, “복수의 언어 공간에 걸쳐 있으면서 어떤 하나의 언어 공동체에도 온전히 귀속될 수 없는 모호한 존재”라는 정체성 역시 알게 한다고 김 교수는 짚는다.광고광고 그런가 하면 1941년작으로 추정되는 ‘못 자는 밤’의 여백에는 1935년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문화옹호 국제작가회의’에 참가한 미국 작가 월도 프랭크의 연설문 일부가 일본어로 적혀 있다. “미를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생명이 하나의 가치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왜냐하면 미를 인정한다는 것은, 생명에의 참여를 기꺼이 승인하여, 생명에 참가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필사 문장은 동주가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파괴와 억압의 시대 속에서 ‘문학하기’의 방향성을 모색했”음을 보여준다고 김 교수는 헤아린다. 나중에 빨치산이 되어 토벌대에 사살당한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박치우(1909~1949)가 1941년 동주의 하숙집으로 보낸 엽서가 이런 고민과 무관하지 않다고 김 교수는 덧붙인다.윤동주가 1942년 1월에 쓴 시 ‘참회록’ 원고 하단에 한글과 한자, 일본어, 중국어 등으로 쓰인 낙서들. 연세대학교 윤동주기념관 소장. 사계절 제공 이밖에 ‘습작기’ 끄트머리에 낙서처럼 적힌 ‘나무’와 ‘서시’의 비교, 1942년 여름 도쿄에서 서울의 벗 강처중에게 보낸 마지막 작품 ‘봄’의 유실된 뒷부분 이야기, 동주 시에 나오는 육진(함경북도 북변) 방언 탐구 등도 흥미롭다. 여기에다가 도시샤대학에 일본 최초로 윤동주 시비를 세운 ‘코리아 동창회’ 사람들, 윤동주의 교토 하숙집 흔적과 오늘의 그 공간을 함께 담은 다큐멘터리 ‘타카하라’의 감독 손장희, “윤동주의 목숨을 앗아간 치안유지법”과 “일본, 일본인, 일본 정부”의 책임을 묻는 일본 성공회 사제 이다 이즈미 등 오늘날 윤동주를 기억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곁들여져 입체적인 독서를 이끈다.광고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윤동주의 오래된 노트 l 김신정 지음, 사계절, 2만6000원 윤동주가 원고지에 정서해 후배 정병욱에게 보관을 맡긴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표지. 연세대학교 윤동주기념관 소장. 사계절 제공 윤동주가 1934년 12월24일부터 1937년 3월까지 쓴 시 59편을 모은 공책 ‘나의 습작기의 시 아닌 시’의 표지. 가로 26.6㎝, 세로 19.1㎝ 크기의 원고지 노트다. 연세대학교 윤동주기념관 소장. 사계절 제공 광고‘나의 습작기의 시 아닌 시’에 쓴 작품 가운데 17편을 골라 고치고 다시 쓴 작품들을 옮겨 적은 두번째 원고 노트 ‘창’의 표지. 연세대학교 윤동주기념관 소장. 사계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