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펜싱 국가대표 오상욱. 브리온컴퍼니 제공 광고뭐랄까, 그의 마음이 조금은 요동칠 줄 알았다. 한국 펜싱 사상 최초로 그랜드슬램(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 우승)을 달성한 오상욱(30)이지 않나.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9월19~10월4일)을 2주 남짓 앞두고, 왕관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리거나, ‘내가 오상욱인데?’라는 자신감이 넘치거나. 하지만 지난 26일 충청북도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만난 오상욱은 ‘덤덤’했다. 어떤 질문에도 목소리 톤이나 표정이 큰 변화 없이 일관됐다. “펜싱은 멘털이 결과를 크게 좌우하는 스포츠예요. 그렇기에 어떤 경우에도 ‘절대 초조해하지 말자’는 것은 운동을 시작하면서 지켜온 나만의 철칙이에요. 조급해지면 자신만의 리듬을 완전히 잃게 되거든요.” ‘흔들리지 않는 멘털’은 그가 대회마다 제 실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게 한 힘인 듯했다. 펜싱 관계자도 “오상욱은 원래 긴장을 잘 안하고 경기 전에도 예민하지 않아서 밥도 잘 먹는다”며 웃었다. 그는 이번 아시안게임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도전자의 마음가짐으로 임하고 있다”고 했다. 펜싱 남자 사브르 최강자 오상욱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개인전 은메달과 단체전 금메달,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2023년 개최)에서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땄다. 세번째 아시안게임에서는 2회 연속 2관왕에 도전하는데, 지난 두번의 대회에 견주면 많은 것이 달라졌다. 구본길 등 선배들이 은퇴하면서 세대교체가 이뤄졌고, 8년 전 막내였던 그는 맏형으로 팀을 이끌어야 한다.광고 “이번 대회는 그동안 대한민국 펜싱이 이룬 ‘세계 최강’ 타이틀을 방어해야 한다는 책임감 있는 무대이자, 새롭게 호흡을 맞추게 된 동료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도전의 장이에요. 최근 아시아 국가들의 펜싱 기량이 상향 평준화되었는데, 치열한 견제와 압박 속에서도 우리가 다시 한번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올라 금메달을 목에 건다면 단순한 1위를 넘어 ‘한국 펜싱은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굳건하다’는 것을 전세계에 알리는 증명의 자리가 될 것 같아요.” “나는 리더십이 없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맏형으로서 깊은 생각이 엿보인다. 한국 펜싱은 항저우 대회 때 금메달 6개, 은메달 3개, 동메달 3개를 수확했다. 역대 아시안게임 펜싱에서 가장 많은 메달 134개(금 52개, 은 46개, 동 36개)를 획득한 나라다. 이번에는 남녀 사브르·에페·플뢰레 개인전과 단체전에 총 12개 금메달이 걸려 있다. 광고광고 ‘개인의 영광’과 ‘한국 펜싱의 위상’을 모두 지켜내야 하는 오상욱은 이번 대회를 위해 허리 수술까지 미뤘다. 허리 추간판탈출증으로 지난해 11월부터 허리가 아팠다. 수술을 받으면 아시안게임에 나설 수 없어 “재활·컨디션 조절을 하면서” 대회를 준비해왔다. “많이 좋아졌다”지만, 대회를 앞두고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허리 부상”을 꼽은 것을 보면, 마냥 괜찮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역시나 덤덤했다. 부상을 이겨낸 비결을 물으니 이렇게 답했다. “초조해하지 않고….” 오상욱은 “펜싱’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올바른 표본’이 되고 싶다”고 했다. ‘가장 잘하는 선수’가 아닌 ‘올바른 표본’이란 말이 인상적이었다. “펜싱 피스트 위에서 칼을 잘 쓰는 선수를 넘어, 훈련에 임하는 태도,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 일상에서의 모습까지 후배들에게 좋은 영감을 주는 ‘롤 모델’이 되고 싶어요.” 광고 2014년 한국 사브르 역사상 ‘첫 고교생 국가대표’가 된 이후 10여년. 운동만 바라보고 쉼 없이 달려오며 성적을 내고, 경력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생각인 듯했다. 2024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 펜싱 최초 올림픽 2관왕에 오른 뒤에는 한 시즌 국가대표를 쉬면서 “10년간 고생한 나 자신을 다독이고,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시간”도 가졌다. “펜싱을 더 잘하기 위해, 더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었죠.” 그 ‘쉼’이 오상욱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오상욱은 2025~2026시즌 국가대표에 복귀한 이후 아시아선수권 정상을 탈환하는 등 나서는 대회마다 상을 휩쓸었다. 대한펜싱협회가 있는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이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규탄 시위로 출입이 막히면서, 개인 장비를 챙기지 못하고 ‘남의 칼’을 빌려 대회에 나섰는데도 메달을 땄다. 아시안게임을 앞두고는 장비를 새로 지급 받았다고 한다. “처음 펜싱 칼을 잡았을 때는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이 종착지인 줄 알았어요. 태극마크의 무게를 견디며 수많은 압박 속에서 뛰다 보니 진짜 목표는 달라지더라고요. 지금은 부상 없이 저만의 펜싱을 흔들림 없이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 “처음 검을 잡았을 때의 그 ‘간절함’과 ‘배고픔’을 늘 가슴에 품고 피스트에 오르겠다”고 한다. 오상욱이 왕관보다 오래 지키고 싶은 것, 그것은 처음 칼을 잡았을 때의 간절함인지도 모르겠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