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이진숙(앞줄 오른쪽 셋째)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3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주최한 ‘5·18 민주화운동의 재조명’ 포럼에서 참석자들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김정효 선임기자 hyopd@hani.co.kr 광고 박치형 |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대우교수·전 EBS 부사장 얼마 전 한 대기업의 ‘탱크데이’ 마케팅과 고교 야구부의 ‘스타벅스 가야지’ 응원에 이어, 이번에는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3일 국회에서 새역사국민운동과 함께 ‘5·18 민주화운동의 재조명’ 포럼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5·18은 다시 ‘소요 사태’로 불렸다. 이 의원은 19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5·18이라고 해서 100% 똑같은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학술 토론회에서 발표·토론한 분들은 각자의 경험과 전문성을 살려서 연구 결과를 발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광고 역사를 다시 들여다보는 일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새로운 자료가 발견되면 기존 해석을 검토하고 수정하는 것이 학문의 기본이다. 그러나 수십년에 걸쳐 축적된 기록과 진상 규명, 사법적 판단까지 아무런 근거 없이 뒤집는 것은 학문적 재검토가 아니다. 토론의 가치는 금기를 깨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데 있다.광고광고 물론 역사에는 해석이 따른다. 그러나 모든 해석이 동일한 무게를 갖는 것은 아니다. 확인된 사실을 정치적 필요에 따라 흔드는 것은 학문적 비판이라기보다 역사의 정치화에 가깝다. 더구나 국회는 국민을 대표하는 헌법기관이다. 그곳에서 열리는 역사 포럼이라면 자료의 신뢰성과 반론의 균형, 무엇보다 피해자에 대한 존중이 전제돼야 한다. ‘재조명’은 책임을 흐리는 면허가 아니라, 오히려 더 엄격하게 검증하겠다는 약속이어야 한다. 200여년 전 영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1819년 8월, 맨체스터 세인트피터스 광장에는 선거제도의 불합리를 성토하고 의회 개혁을 요구하는 6만여명의 시민이 모였다. 그러나 권력은 이 평화로운 집회를 진압하기 위해 기병대를 동원했고, 기마병들이 집회 현장에 난입하면서 시민들을 공격했다. 18명이 목숨을 잃고 수백명이 다쳤다.광고 사람들은 이 참극을 ‘피털루 대학살’이라고 불렀다. 나폴레옹을 물리친 ‘워털루’를 빗대어, 외적을 상대해야 할 군대가 자국민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는 사실을 신랄하게 고발하는 이름이었다. 당시 권력은 시위대를 위험한 군중으로 규정했고, 학살을 질서 회복으로 포장했다. 집회를 억압하고 언론에도 재갈을 물렸다. 그러나 권력은 진실까지 통제할 수 없었다. 피털루의 기억은 오히려 더 강하고 오래도록 이어졌고, 의회 개혁과 참정권 확대를 요구하는 민주주의 운동의 도덕적 기반이 되었다.리처드 찰리가 그린 ‘피털루 대학살’. 위키미디어 코먼스 1980년 광주 역시 처음에는 권력의 언어에 갇혀 있었다. 신군부는 시민을 ‘폭도’라고 불렀고, 광주에서 벌어진 일을 ‘사태’로 규정했다. 국가폭력을 질서 유지로 포장하고 그 책임을 시민에게 돌리려 했다. 그러나 진실은 결국 드러났다. 12·12 군사반란과 5·18을 전후한 신군부의 행위는 사법적 판단을 통해 군사반란과 내란 등으로 단죄됐고, 시민들의 저항은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행동으로 재평가됐다. 국가가 시민에게 뒤집어씌웠던 부당한 서사가 바로잡힌 것이다. 광주가 남긴 것은 저항의 기억만이 아니다. 계엄군이 물러난 뒤 시민들은 스스로 질서를 유지했다. 식량을 나누고 부상자를 돌보며 공동체를 지켰다. 강압이 사라지면 사회가 무너진다는 권위주의의 논리를 시민 스스로 반박한 것이다. 이러한 진실규명과 기록은 광주의 기억을 민주주의의 자산으로 만들었고, 5·18 기록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광주는 한 지역의 비극을 넘어 대한민국의 헌정 유산이자 인류의 인권 기록이 됐다.광고 피털루와 광주는 시대도, 구체적인 전개 과정도 다르다. 그러나 두 사건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국가권력은 시민의 저항에 ‘폭동’과 ‘소요’라는 이름으로 취급했지만, 훗날 민주사회는 그 언어를 다시 심판했다. 위험한 군중으로 규정됐던 권력의 프레임을 걷어내고 시민을 다시 권리의 주체로 세운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5·18을 특정 지역이나 특정 정파의 기억으로만 다뤄서는 안 된다. 보수가 5·18을 대한민국의 헌정 유산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자기 부정이 아니다. 법치와 군에 대한 문민 통제,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지키는 일은 보수와 진보를 넘어 민주주의가 공유해야 할 원칙이기 때문이다. 광주를 존중한다는 것도 단순히 특정 이념을 받아들이는 일이 아니다. 국가권력이 헌법의 통제를 벗어나 시민을 적으로 삼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확인하는 일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5·18을 다시 ‘소요’의 언어로 되돌리는 재조명이 아니다. 피털루의 기억이 의회 개혁과 참정권 확대의 동력이 되었듯, 5·18의 기억도 더 넓은 자유와 더 단단한 헌정질서로 이어져야 한다. 역사를 앞으로 읽는다는 것은 과거를 되풀이해 기억하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다. 기억에서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을 제도로 만드는 일이다. 기억을 제도로 바꾸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가 역사에 답하는 방식이다.
‘피털루’와 광주…기억을 제도로 바꾸는 민주주의 [왜냐면]
박치형 |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대우교수·전 EBS 부사장 얼마 전 한 대기업의 ‘탱크데이’ 마케팅과 고교 야구부의 ‘스타벅스 가야지’ 응원에 이어, 이번에는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3일 국회에서 새역사국민운동과 함께 ‘5·18 민주화운동의 재조명’ 포럼을 열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