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제25회 한국 로레알-유네스코 여성과학자상 특집 ① 학술진흥상 수상자 이경 동국대 약학대학 교수 인터뷰 30년간 ‘1㎚ 저분자 화합물’ 신약 연구 췌장암·대장암 등 억제 후보물질 개발 표적 단백질 85% 미개척 ‘가능성 무한’ “10번 중 9번 실패, 축적·반복이 중요” 출산·육아 병행하며 뒤처질까 걱정도 여성 후배에 “끝까지 가다보면 길 열려”지난달 27일 열린 ‘제25회 한국 로레알-유네스코 여성과학자상’ 시상식에서 본상인 학술진흥상을 수상한 이경 동국대 약학대학 교수가 그간의 연구 여정을 소개하는 강 연을 하고 있다. 로레알코리아 제공 광고올해 한국 여성과학계를 대표하는 연구자로 의약화학 및 화학생물학 분야 권위자인 이경 동국대 약학대학 교수가 선정됐다. 그는 지난달 27일 로레알코리아와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후원하고 여성생명과학기술포럼이 주관한 ‘제25회 한국 로레알-유네스코 여성과학자상’의 본상인 ‘학술진흥상’을 수상했다. 지난 30여 년간 이 교수는 분자량 500달톤(Da) 안팎, 크기로는 1나노미터(nm) 내외의 저분자(소분자, small molecule) 화합물 기반의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 중이다. 이는 최근 신약 개발 트렌드가 바이오 의약품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아미노산이 결합한 펩타이드나 고분자 단백질 기반인 것과 대비되는 행보이기도 하다. 더구나 최근엔 저분자 화합물 약품은 아스피린이나 아세트아미노펜 등과 같이 유기합성 기반으로 제조되는 전통적이고 기초적인 의약품으로 인식되는 경향도 크다.지난달 27일 ‘제25회 한국 로레알-유네스코 여성과학자상 시상식’에 앞서 건강한겨레와 인터뷰하는 이경 동국대 약학대학 교수. 이 교수는 “인류가 의학적으로 치료제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찾아낸 소분자 화합물 기반의 표적 단백질 중 실제 약으로 완성돼 시장에 나온 것은 전체의 30%도 채 되지 않는다”며 기초적인 의약품 형태로 여겨지는 저분자 화합물 치료제의 잠재력이 여전히 크다고 강조한다. 로레알코리아 제공 하지만 이 교수는 기초적인 의약품 형태로 여겨지는 저분자 화합물 치료제의 잠재력이 여전히 크다고 말한다. 그는 “인류가 의학적으로 치료제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찾아낸 표적 단백질 중 실제 약으로 완성돼 시장에 나온 것은 전체의 15% 정도에 불과하다”며 “나머지 약 85%의 표적 단백질이 여전히 미개척 영역으로 남아 있다는 의미”라고 강조한다.광고 저분자 화합물엔 여전히 최신 바이오 의약품이 넘지 못하는 구조적·임상적 장점도 남아 있다. 우선 분자 크기가 작고 단순해 활용성이 크다. 저분자 화합물은 분자 크기가 작은 만큼 생체 침투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약물이 세포막을 쉽게 통과해 종양 미세환경 깊숙한 곳까지 정밀하게 침투할 수 있다. 특히 신경계 약물 개발의 대표적인 난점인 뇌혈관장벽(BBB)을 넘을 가능성도 크다. 작은 크기만큼이나 분자의 합성 구조도 명확해 체내에 투약했을 때 예측 불가능한 영역을 줄일 수 있다. 안전성과 유효성 측면에서 오랫동안 의약품으로 사용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또한 약품 형태도 주사제보다는 먹는 약 형태가 대부분이라 환자의 복용 편의성이 크다. 제조법에서도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제조 방법도 비교적 간편한 유기합성 제법을 사용하기에 대량의 약품을 저렴하게 생산하고 공급할 수 있다.지난달 27일 ‘제25회 한국 로레알-유네스코 여성과학자상 시상식’에 앞서 건강한겨레와 인터뷰하는 이경 동국대 약학대학 교수. 최근 그는 췌장암과 폐암, 대장암 발생에 관여하는 케이라스(KRAS) 단백질 억제 후보물질을 개발하는 등 항암제 영역에서 기대되는 연구 성과를 거뒀다. 로레알코리아 제공 한편 저분자 화합물 약품의 분자 크기가 작고 구조가 단순하다고 해서 신약 개발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 교수는 “신약 개발 과정에서는 열 번 중 아홉 번 이상 의도와 다른 결과나 실패를 마주하게 된다”고 말할 정도로 지난 30년간 오히려 무수히 많은 ‘실패한 데이터’를 다뤄왔다. 새로운 구조의 저분자 화합물을 발견했어도 이 물질이 체내 어느 곳에 붙어 작용하는지, 또 어떻게 체내에서 작용할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광고광고 그럼에도 이 교수는 실패한 데이터라도 버리지 않고 모아뒀다 몇 번이고 다시 꺼내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의약화학은 단순히 분자를 합성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며 “원자 하나, 작용기 하나를 바꿔가며 효능과 안전성을 다듬는, 화학의 언어로 생명현상을 다루는 학문”이라고 설명한다. “예측하지 못한 이상한 데이터가 나왔을 때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를 끝까지 추적하는 세심함과 끈기가 필요하다”고도 덧붙였다. 실제 그는 당장은 활용이 어려워 보여도 새로운 화합물질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자신만의 방대한 ‘화합물 라이브러리’로 차곡차곡 축적해오고 있다.이경 교수는 후배 여성 과학자들에게 “너무 조바심을 갖지 않고 끝까지 연구를 밀고 가다보면 닿을 수 없을 것만 같던 곳에 오게 된다”고 조언하고 과학 연구의 길을 포기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로레알코리아 제공 그는 이어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이나 다른 연구자들과의 학술교류를 통해 새로운 실마리를 얻거나 실험 중에 우연히 활용법을 발견할 수도 있다”며 “당장은 효능이 부족해 보이는 저분자라도 분자 구조를 미세하게 변형하거나 새로운 표적 단백질과 결합시켰을 때 그 분자가 생체 내에서 어떤 분자 구조로 어떻게 반응하는지 세심하게 추적하다보면 완전히 새로운 기전의 표적 치료제로 반전될 기회가 찾아온다”고 설명했다.광고 실제 이러한 과정을 거쳐 최근 그는 췌장암과 폐암, 대장암 발생에 관여하는 케이라스(KRAS) 조절 후보물질을 개발하는 등 항암제 영역에서 기대되는 연구 성과를 거뒀다. 그의 연구는 표적 단백질을 직접 공격하는 기존 방식을 넘어, 단백질과 상호작용하는 주변 미세환경과 제어 요인까지 공략하는 폭넓은 전략을 취하고 있다. 나아가 이를 저분자 물질 기반의 차세대 모달리티 활용으로 방법론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특히 저산소 환경에서 암세포가 무산소성 대사로 전환하며 살아남는 특성에 착안해, 암세포의 성장과 전이를 근본적으로 억제하는 약물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이 지점에서 그는 여성 연구자의 강점을 특정 기질로 단정하진 않는다. 다만 “서로 다른 입장과 관점을 아우르고 조율하는 유연함이 신약 개발처럼 여러 분야가 얽히는 현장에서 큰 힘이 된다”고 말한다. 다만 뛰어난 역량을 갖춘 여성 과학자들이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연구 성과를 내기 위해선 국내 연구 환경 개선이 더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실험실 연구 특성상 야간 작업과 주말 연구가 빈번하다보니 돌봄의 부담이 주로 여성 연구자에게 집중되면서 유능한 이공계 인재들이 ‘경력 단절’의 늪에 빠지거나 스스로 자리를 떠나는 일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경 교수 역시 연구자로서 가장 왕성하게 성과를 내야 할 30대 시절 출산과 육아, 연구를 병행하며 ‘다른 연구자들보다 뒤처지는 것이 아닐지’ 걱정하며 중압감을 견뎌냈다. 당시를 떠올리던 그는 후배 여성 과학자들에게 “너무 조바심을 갖지 말고 나 자신을 믿고 끝까지 연구를 밀고 가다보면 닿을 수 없을 것만 같던 곳에 오게 된다”고 조언하고 과학 연구의 길을 포기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또한, 여성 과학자의 성장이 연구 성과에만 갇혀서는 안 된다고 봤다. 연구를 넘어 산업과 과학정책의 리더로 설 기회가 여성에게는 유독 드물었던 만큼 그 문을 넓히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마다의 재능을 일찍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리더로 자라도록, 과학 생태계가 긴 호흡으로 받쳐줘야 합니다. 그것이 다음 세대를 위한 투자입니다.”광고 한편, 국제적인 화장품 기업인 로레알그룹과 유네스코는 ‘세상은 과학을 필요로 하고, 과학은 여성을 필요로 한다’는 슬로건의 세계 및 한국 여성과학자상을 개최 중이다. 세계여성과학자상은 노벨상 수상 여성 과학자를 7명이나 배출한 국제 여성 과학계의 대표적인 상이다. 로레알그룹은 설립자이자 염색약을 발명한 프랑스의 화학자 외젠 슈엘러의 정신을 기려 과학계 내 혁신적인 과학 연구 성과와 다양성을 증진하고 여성 연구자의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이를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최지현 기자 jhcho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