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범선 커티샥. 위키미디어 코먼스광고박경미 | 한국교원대 초빙교수·전 국회의원1869년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진수된 ‘커티샥’은 당대 가장 빠른 범선이었다. 유선형 선체에 정교하게 재단된 돛을 단 이 배를 이길 상대는 없어보였다. 그러나 커티샥이 태어난 바로 그해, 수에즈 운하가 열렸다.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범선은 운하를 지날 수 없어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야 했지만, 증기선은 운하를 가로질러 항해 거리를 줄였다. 신선도가 생명인 찻잎 무역의 주도권은 순식간에 넘어갔다. 아무리 정교하게 다듬은 기술이라도 판을 통째로 바꾸는 패러다임의 전환 앞에서는 무력했다.오늘의 한국은 이 역사적 교훈에서 자유롭지 않다. 반도체, 조선, 자동차에서 거둔 성공은 남이 열어 놓은 항로에서 더 빠른 범선을 만들어 낸 추격의 역사였다. 그러나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판이 바뀌었고, 산업 지도가 통째 다시 그려지고 있다.광고경쟁국들은 이미 증기기관을 장착했다. 미국은 민관의 자본과 인재를 인공지능에 쏟아 붓는 총력전에 들어갔고, 중국은 국가가 직접 판을 짜는 속도전으로 맞서고 있다. 두 거함 사이에서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다. 개별 기업의 분투나 부처 단위의 사업으로 감당할 수 있는 국면은 이미 지났다.이재명 정부가 명운을 걸고 추진하는 3대 메가프로젝트는 동력을 교체하는 일이다. 반도체, 피지컬 인공지능, 인공지능 데이터센터를 묶어 ‘한국형 인공지능 생태계’를 구축하고, 이를 발판으로 대체불가 대한민국, 초격차 산업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국가 전략이다.광고광고인공지능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으뜸 조건은 인재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글로벌 인공지능 인덱스에서 한국은 종합 5위지만 인재 부문은 13위로 처지고, 인공지능 인재 순유입률은 1만명당 마이너스 0.36명이다. 이공계 학생의 의학계열 쏠림은 여전하고, 어렵게 키운 박사급 연구자는 더 나은 처우를 찾아 국경을 넘는다. 대부분의 정부 지원이 3~5년짜리 재정사업 틀에 갇혀 있어 연구자가 긴 호흡으로 도전할 여지가 없다.이 지점에서 중국의 행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국은 2017년 ‘차세대 인공지능 발전 규획’을 기반으로 국가 주도 전략을 이어왔다. 초·중등부터 인공지능 교육을 체계화하고, 대학의 인공지능 관련 전공을 대폭 늘렸다. 과감한 ‘블록 펀딩’(통액 배분, 자율 편성)과 주거·연구비·자녀교육 패키지로 인재의 귀환과 정착을 유도했다. 미국인 노벨화학상 수상자가 최근 칭화대로 옮긴 사례는, 인재를 빨아들이는 나라로 탈바꿈한 중국의 위상을 보여준다.광고다행히 우리도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학·석·박사 통합과정이 법제화되어 대학 입학부터 박사 취득까지 5년 반으로 줄이는 패스트트랙이 열렸고, 국가석좌교수제가 시행 예정이며, 교수와 연구자의 겸직, 이중 소속 허용 확대로 규제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다년도 블록 펀딩으로 해마다 연구비 확보에 매달리지 않도록 안정감을 주어야 실패를 무릅쓴 도전이 나온다. 최근 미국으로 향하던 인공지능 인재의 발걸음이 주춤해졌다고 하니, 파격적인 인재 유치 프로그램으로 이들을 붙잡을 골든타임이다.커티샥의 이야기는 몰락으로 끝나지 않는다. 커티샥은 증기선이 들어가지 못하는 남태평양으로 눈을 돌려 호주산 양모를 나르는 새 무역로를 개척하며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인재 정책의 요체도 여기에 있다. 조선업 불황기의 용접·설계 인력이 이차전지와 방산으로 이동해 경쟁력을 입증했듯, 특정 기술을 못 박아 가르치기보다 재교육과 전직이 가능한 역량을 기르고, 그 역량이 산업 간 이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갖추는 일이다.커티샥은 현재 런던 그리니치에 전시되어 있다. 관광객들은 빼어난 외관에 감탄하지만 그 배는 끝내 시대를 넘어서지 못했다. ‘완벽한 어제를 재연하는 능력’과 ‘불완전한 내일에 투자하는 용기’는 다른 것이다. 3대 메가프로젝트는 후자를 향한 담대한 선택이다. 이 항해가 성공하는 날, 우리는 남의 항로를 뒤쫓는 추격자가 아니라 새로운 바다의 규칙을 제정하는 개척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