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사람의 마지막 직업’을 쓴 앨리슨 퓨 교수는 자동화의 위협 속에 서로의 눈동자를 쳐다보며 내면을 헤아리는 다정한 인간의 노동이 언제까지 남아 있을 수 있을지 질문한다. 사진은 한국의 활동가가 돌봄 지원이 필요한 사람의 집을 방문해 손을 잡고 이야기하고 있는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광고2019년 네덜란드의 한 슈퍼마켓 회사는 독특한 계산대를 따로 만들었다. 물건값을 치르면서 직원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계산대였다. 디지털화가 가속화되는 시대, 외로움에 대응하는 작은 제스처라고 회사쪽은 밝혔다. 사실 20세기 초부터 서구에서 식료품 구매는 불편할 정도로 깊은 사회적인 만남을 거쳐야 했다. 고객이 쇼핑 목록을 건네면, 계산원은 제품을 꺼내 와 손님에게 갖다 주었다. 식료품점 주인들은 고객의 욕구, 습관, 가족 상황 등을 면밀히 파악하며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 다소 혼란스러운 상호작용은 1916년 미국 한 체인점이 고객들에게 가게 안에서 물건을 고를 수 있도록 하면서 사라져 갔다. 소비자와 제품 사이에 계산원의 관계가 빠졌다. 한국의 텔레비전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유명 배우를 시골 미용실 헤어 디자이너로 일하게 하거나, 작은 학교 선생님으로 변신시키는 데도 이유가 있다. 몸을 맞대고 일상적인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상대방 모두 기꺼이 마음을 나누게 되고, 그런 가운데 갈등과 감동의 ‘휴먼 드라마’가 생기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의 발달은 개인을 촘촘하게 데이터로 만들어 취향과 버릇을 분석하지만, 그 안에 끈끈한 관계의 자취는 없다. 자동화의 위협 속에 서로의 눈동자를 쳐다보며 내면을 헤아리는 다정한 인간의 노동이 언제까지 남아 있을 수 있을까? 2019년 8월, 춘천시 효자동 한 집에서 재가요양보호사가 어르신을 돌보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사람의 마지막 직업’은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 사회학과 앨리슨 퓨 교수가 2024년 발표한 노동의 변화에 관한 보고서다. 저자는 친밀함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돈벌이를 위한 목적적 활동 이외에 중요한 추가 노동을 한다는 점을 알게 됐고, 이를 ‘연결노동’(connective labor)이라 정의했다. 연결노동은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읽고 되돌려주는 숙련된 실천이자 성과를 산출하는,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간의 노동이다.광고 저자는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상담사, 의사, 목사, 미용사, 변호사, 영업원, 경찰관 등 연결노동자 108명을 만나 인터뷰했다. 연결노동은 보건, 상담, 법률, 광고, 연예, 경영, 부동산, 관광, 보안 등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있다. 사실 ‘연결’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한 것이다. 가령 환자와 의사 관계에서 ‘치료동맹'은 성공적인 치료의 핵심 역할을 한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노동은 제공자와 수혜자를 거대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묶어준다. 연결노동자는 몸을 써서 타인의 감정을 읽고 활용하며, 협력하고, 즉흥성에 대응하며, 실수하거나 이를 관리한다. 신체의 접촉과 상호작용으로 상대의 신호를 감지하고, 적절한 감정을 느끼지 못할 땐 자신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과학기술이 발달할수록 연결노동은 더 은폐됐다. 단기 계약직은 일회용 취급을 받고, 아이 돌보미나 출장 조리사 등 플랫폼 기업을 통해 일하는 연결노동자와 배달노동에 종사하는 ‘긱 경제’ 노동자들은 별 차이가 없게 됐다. 이제 이들은 스스로 업무 흐름을 통제할 수 없으며 회사의 알고리즘 모델링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저자가 만난 연구참여자 중에는 상담 앱으로 서비스를 하는 여성이 있었는데, 그는 “로봇이세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인간임을 증명하려 노력해야 했다. 한국에도 교육혁신이라며 잘 알려진 실리콘밸리의 실험학교는 컴퓨터를 이용해 학생을 가르치며 기존 교사의 업무를 ‘내용 전달’과 ‘동기 부여’로 분리했다. 저자가 연구한 학교에서는 두 업무의 종사자가 같은 지위를 가졌지만, 비용 제약이 큰 학군에서는 콘텐츠 전문가를 앱으로 대체하고, 동기부여를 위한 조언자는 숙련도가 떨어지는 감정노동자로 대체해 임금을 절약할 가능성이 있다. 광고광고 인공지능을 두고서도 ‘인간보다 낫다’거나, ‘없는 것보다 낫다’거나, ‘함께하는 것이 낫다’는 등의 주장이 있지만 저자는 이런 생각이 인간의 연결노동을 은폐하고 업무를 과중화하여 결국 연결노동이 사라지는 데 일조한다고 본다. 점점 소수만 ‘사람대접’ 받는 연결노동의 혜택을 입게 된다는 뜻이다. 저자는 “사회구조 아래에 속한 사람들은 위에 속한 사람들에게 직접 연결노동을 제공하는 반면, 본인들은 자동화된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미래가 오고 말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대로라면 연결노동자는 노동자로서 주체성을 잃고 노예화할 것이다. 청소 로봇이 잘 지나가게 하기 위해 장애물을 치워주듯, 인간은 로봇의 경로를 쉽게 만들어주는 데 머물 수 있다. AI가 지배하는 미래에 인간은 ‘하인’ 구실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앨리슨 퓨 교수는 자동화의 위협 속에 서로의 눈동자를 쳐다보며 내면을 헤아리는 다정한 인간의 노동이 언제까지 남아 있을 수 있을지 질문한다. 사진은 2025년 11월 14일 전주비전대학교 물리치료학과, 치위생과 교수들이 홀로 지내는 김아무개 할머니의 집을 방문해 재활운동과 구강관리를 해주는 장면.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사실 연결노동 자체는 언제나 긍정적인 작용만 하지 않으며 위계도 있다. 의사나 변호사처럼 권위와 결정권을 갖고 있을 때 연결노동은 타인에 대한 지배나 억압의 수단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연결노동자가 수혜자보다 낮은 지위에 해당한다면 일하면서 착취나 피해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진다. 하지만 더욱 위험한 것은 연결노동의 몸짓과 신체적 활동, 시간을 표준화하는 ‘대본화’와 모든 것을 업적과 숫자로 환원하는 ‘수치화’다. 평가, 측정, 각본, 숫자를 중시하는 구조는 경청할 시간과 돌봄 능력을 빼앗아 간다.광고 저자는 “사회적 건강”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민 공간과 학교에서 연결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소비자와 제공자가 연대하며, 정책 입안자들과 프로그램 관리자들, 보험사들에 무엇이 측정되고 있는지, 데이터 분석이 무엇을 왜곡했는지 알아내며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헌신적인 리더십, 적절한 피드백을 제공하는 공동체의 ‘관계적 설계’와 사랑을 시스템화하는 ‘연결문화’, 그리고 연결을 뒷받침하는 물질적 조건과 충분한 시간을 고려한 ‘자원분배’까지 고루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기계 학습 봇에 대한 과대광고에 저항하며 자동화와 AI가 인간과 가까워 보일 때 느끼는 경탄에 대해서도 경계하자고 한다. “기계화의 바탕에는 인간이 서로를 위해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빈약한 이해가 깔려 있다”며 저자는 “연결노동을 축소하고 억제하고 자동화하다가는 크나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강하게 경고한다. 사람의 마지막 직업 l 앨리슨 J. 퓨 지음, 김재경 옮김, 추수밭, 2만8000원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인공지능이 대신 할 수 없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노동 [.txt]
2019년 네덜란드의 한 슈퍼마켓 회사는 독특한 계산대를 따로 만들었다. 물건값을 치르면서 직원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계산대였다. 디지털화가 가속화되는 시대, 외로움에 대응하는 작은 제스처라고 회사쪽은 밝혔다. 사실 20세기 초부터 서구에서 식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