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2030 투병문화매거진 병:맛의 겉표지. 스튜디오어중간 제공.광고“우리나라는 ‘20∼30대라면 모름지기 이 정도는 해야지’하는 통념이 강하잖아요. 대학 졸업하면 취업해야 하고 취업하면 결혼하고. 거기서 조금만 벗어나도 지탄받는데 젊은 나이에 투병하는 이들은 어떨까요.”‘병맛.’ 다소 발칙해 보이는 잡지의 제목은 그 앞에 ‘2030 투병문화매거진’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읽어야 비로소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2030 투병문화매거진 병:맛(이하 병맛)’은 암, 희귀난치성 자가면역질환 등 병을 앓는 20~30대 이야기를 인터뷰, 에세이, 단편소설 등 다양한 형태의 글과 사진·그림으로 표현한 잡지다. ‘아프기에는 젊은 나이’로 여겨지는 이들의 투병기다. 출판사 ‘스튜디오어중간’에서 발행한다. 2020년 1권, 2023년 2권이 나온 데 이어 올해 중 3년 만에 3호가 발행될 예정이다.병맛은 전 편집장이자 미술 작가이기도 한 장지수씨가 겪은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됐다. 장 전 편집장도 30대에 위암을 겪은 젊은 투병자였다. 투병 경험을 에세이로 엮어 책을 내기도 했다. 연애, 취업, 결혼 등 특정 나잇대의 역할이 강요되는 우리 사회에서 투병 이력은 ‘지체’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간단치 않다. 한층 더 이해와 공감이 필요하지만 ‘젊으면 건강하다’는 사회적 통념 속에 젊은 투병인 이야기는 잘 다뤄지지 않았다. 젊은이의 투병 서사를 보여주는 병맛을 선보인 이유다.광고40대에 접어든 장 전 편집장은 자신이 ‘2030 투병문화매거진’의 얼굴 역할이 더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아내이자 잡지 편집자로 활동해 온 김가현 스튜디오어중간 대표에게 편집장 자리를 넘겼다. 김 대표에게 병맛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담겼는지 직접 들어봤다.김가현 스튜디오어중간 대표. 스튜디오어중간 제공병맛의 표지는 단순하다. ‘병맛’이라는 잡지 제목이 오른쪽 상단에, 그 아래 제호와 권수가 적혔다. 다만 그 바탕을 채우는 색은 강렬하다. 1권은 빨간색, 그에 따라 제호도 ‘빨강, 뜨겁고 매움’이다. 표지에 담긴 ‘맛과 색’이 잡지 전반의 내용을 일러준다.광고광고빨강색 1권은 현실에 굴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병과 싸우는 사람들 이야기다. 악착같이 공부해 서울대 로스쿨에 입학했지만, 그 사이 악화한 루푸스 신장염을 겪으며 글쓰기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작가 ‘희우’ 이야기가 담겼다. 아내의 암 재발에 굴하지 않고 각종 논문을 섭렵하며 ‘암 죽이는 좋은 습관’을 주제로 블로그를 운영하는 유명길·이미영 부부의 이야기도 전해진다.2권의 제호는 ‘청록, 얼얼하고 질긴.’ 고통과 제약 조건 앞에 병과 삶의 동행을 고민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각기 다른 병과 직업을 가진 젊은 투병인들이 구직활동, 경력 형성 등 ‘일’과 관련된 어려움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는 좌담회 기사가 눈에 띈다.광고왜 ‘색과 맛’이 병맛의 콘셉트가 되었을까. “한 사람이 겪는 ‘병’이라는 내밀한 경험은 오감으로 다가와요. 그런 감각이 독자에게도 전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김 대표가 말했다. 다양한 감각으로 병이 ‘체험’될 때 투병인을 향한 공감의 길이 열린다는 의미다. ‘잡지’여야 했다는 이유도 다양한 병에 대한 감각을 전하기 위해서다. “보통 글자를 읽기 전에 이미지로 먼저 어떤 느낌을 받고 글에 몰입되는 것 같아요. 잡지라는 공간에서는 사진이 무대 역할을 하는 거죠.” 길바닥에 떨어진 장미, 바닥에 널린 홍고추, 대도시 속 빌딩과 약국의 간판, 우거진 수풀 등 병맛에 들어간 사진과 그림은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의 한 장면을 포착해 투병인들의 일상과 연결짓는다.“섣부른 위로를 경계”하고 투병인들을 위해 “단서를 제시하는 일.” 김 대표가 전한 병맛의 제작 방향이다. 젊은 투병인을 비극이나 동정의 시선으로 그리지 않겠다는 의미다. 병이라는 조건은 때로 ‘인생의 해상도’를 더 높여주기도 한다. 병맛 2권, 일과 관련된 대담 기사에서 정승훈씨는 “암 치료 이후에 직업을 선택하는 것, 그러니까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라는 사람을 정의하고 그에 맞는 삶을 다시 설계하게 됐다”고 전했다. 암이라는 삶의 제약 조건이 오히려 나를 돌아보고, 그에 맞춰 일과 삶을 꾸리는 데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병맛 1권 ‘빨강, 뜨겁고 매움’의 내지. 스튜디오어중간 제공.김 대표는 올해 출간을 목표로 병맛 3권을 제작하고 있다. 가족, 친구, 연인 등 젊은 투병인의 ‘주변’에 있는 이들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다. 낭만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벗어나고 싶은, 투병인과 주변인의 양면적 관계가 핵심이다. 김 대표는 “1∼2권을 작업하면서 ‘투병이라는 서사가 과연 당사자만의 것인가’라는 질문이 제작진에게 계속해서 있었다”고 했다. 사랑하는 이의 병을 돌보며 학업, 취업, 결혼 등을 함께 미룬 청년 또한 적지 않다.병맛 제작진은 결국 투병인들의 이야기는 ‘투병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 혹은 우리 주변의 소중한 사람은 모두 언젠가 아프고 병든다. “그래서 병맛은 누구나 읽을 수 있고 누구나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당사자주의에서 벗어나 투병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점을 계속 보여주고 싶어요.” 김 대표가 포부를 전했다.정봉비 기자 b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