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지난 28일 밤에서 29일 새벽 사이 러시아군 자폭 드론에 맞아 불이 난 루마니아 갈라치의 한 아파트. 로이터 연합뉴스광고러시아발 드론 공포가 유럽의 하늘을 다시 덮쳤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인 루마니아의 민간 주택이 러시아 자폭 드론에 맞은 데 이어, 독일 뮌헨 공항 상공에도 정체불명 비행물체가 날아다녔다.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승전보가 끊긴 러시아가 ‘확전’으로 국내 여론 불만을 잠재우고, 유럽의 동요를 꾀한다는 해석이 나온다.블리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29일(현지시각) 소셜미디어 엑스(X)에 “유럽연합(EU) 나라 시민들이여, 당신들의 정부가 독단적으로 러시아와의 전쟁에 발을 들였음을 깨달으라”며 “그러니 경계를 풀지 말고 무슨 일이 생겨도 놀라지 말라. 평화롭게 잠잘 날은 끝났다”고 썼다.이런 발언은 28일 밤에서 29일 새벽 사이 러시아군의 중형 자폭 드론인 ‘게란-2’가 루마니아 동부 갈라치의 아파트를 들이받은 뒤 나왔다. 이 공격으로 아파트 주민 2명이 대피 도중 찰과상을 입었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나토 회원국 시민이 러시아군 공격에 다친 첫 번째 사례다. 니쿠쇼르 단 루마니아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에서 러시아가 이번 사건에 “전적인 책임”이 있다며 자국 내 러시아 총영사관을 폐쇄한다고 밝혔다.광고러시아는 공식적으로는 이번 공격이 자기 소행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카자흐스탄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회의에서 “이 회의장에 들어오기 직전에야 우리 드론이라고 추정되는 어떤 물체와 연관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확인이 이뤄지기 전까진 그것의 출처가 무엇인지 아무도 말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평소 대서방 강경 발언을 주도하는 메드베데프 부의장은 이날 엑스 메시지와 별도로 자국 메신저 맥스에서 유럽 지도자들을 향해 “그들은 대비해야 할 거다. 이런 일은 계속 생길 것”이라고 위협했다.실제 하루 뒤인 30일 아침 서유럽 뮌헨 공항 일대에 출처를 알 수 없는 비행체가 떠 공항 운항이 1시간여 동안 멈췄다. 조종사 2명이 드론으로 보이는 물체를 발견해 신고하자 경찰 헬리콥터가 일대를 조사했지만, 비행체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성령강림절 연휴로 붐비던 공항이 멈추면서 26대의 항공기가 다른 공항으로 돌아갔다.광고광고니쿠쇼르 단 루마니아 대통령이 29일 러시아 드론에 맞아 불이 난 루마니아 갈라치의 아파트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AFP 연합뉴스이는 지난해 유럽 전역을 떠들썩하게 한 러시아의 ‘하이브리드(복합) 도발’ 때와 비슷한 양상이다. 지난해 9월 러시아군 드론 19대가 나토 회원국 폴란드 영공을 침입한 데 이어, 연말까지 덴마크·노르웨이·벨기에 등의 공항·군기지에 정체불명 드론 출몰이 잇따랐다. 뮌헨 공항은 그해 10월2·3일 이틀 연속 드론 소동에 운영이 중단되는 등 주된 타깃이었다. 유럽에서는 이때부터 러시아의 하이브리드 도발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쓰였다.이런 도발이 곧 다시 시작될 거라는 경고는 최근 서방 각국에서 쏟아져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4년이 넘었지만 진격이 지지부진하자 유럽을 공격해 국내의 전쟁 불만 여론을 반전시키고, 병력을 추가 동원할 명분을 만들려 한다는 얘기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서방 정보기관들 추산을 인용해 “러시아군은 한달에 거의 3만5000명 병력을 잃고 있는데, 이는 크렘린이 모집할 수 있는 (신병) 규모를 넘어선다. 현재 속도면 곧 강제 동원에 의존하지 않고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감당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광고이에 카야 칼라스 유럽연합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지난 26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만을 위해 추가 동원에 나선다면 이는 러시아가 전쟁을 이기고 있지 않다는 신호가 될 것”이라며 “어느 순간 그들은 동원 정당화를 위해 긴장을 고조시킬 필요가 생길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러시아가 유럽의 방비 태세를 시험하려는 의도 역시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수의 드론을 날려 유럽 방공망의 작동 방식과 대응 시간 등을 톺아볼 수 있는 것이다. 유럽에 ‘우크라이나를 도우면 자국 안보가 불안해진다’는 신호를 줘 여론을 분열시키는 효과도 있다.러시아로서는 이만큼 도발해도 나토가 보복하지 못할 거라는 계산이 서 있다. 최근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유럽 사이가 냉랭해지며 미국이 유럽 방위에서 발을 빼려는 분위기인 데다, 드론 등 신무기에 대한 유럽의 대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팔 욘손 스웨덴 국방장관은 “지난 24개월 동안 유럽의 안보 환경은 악화됐고, 러시아는 하이브리드 작전에서 더 큰 위험을 감수하려는 성향을 보인다. (심리전·해킹 등을 넘어) 물리적 양상으로도 고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이날 공격에 유럽의 대응은 ‘구두 경고’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오아나 토이우 루마니아 외무장관은 자국 디지24 방송에 나토 조약 제4조 발동을 요구할지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실제 요구에는 나서지 않았다. 이 조항은 회원국 한 곳의 안보가 적으로부터 위협 받으면 모든 회원국이 모여 대응을 논의하게끔 한다. 위협에 놓인 회원국이 발동을 요구하고 다른 회원국들이 수용해야 발동된다.광고대러시아 강경파인 도날드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유럽 나라들을 향해 더욱 확고한 대비를 촉구했다. 그는 엑스에 “메드베데프 부의장은 유럽연합 시민들의 평온한 잠은 끝났다고 말했다”고 상기하며, “나토 안의 모든 사람은 이제 이런 현실과 (러시아의) 말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썼다.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